35년 넘게 우리나라를 무단 침략하여 총칼로 지배하던 강도 일본이 미국에 패하여 쫓겨간 뒤(1945) 20년만인 1965년 6월 22일 한국과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였으니,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이다. 한국과 일본은 6ㆍ25전쟁 중이던 1951년 이후 5차례에 걸쳐 회담을 했으나 서로 의견이 엇갈려 회담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일본은 개인 배상을 제안했지만 박정희 정부는 국가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결국 1964년 박정희 군부 정권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죄를 반성하고 사죄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한 과거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했으나 양국은 그러한 과정을 생략했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청산하였다면 독도영유권 문제, 종군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자 피해 보상 문제 등 양국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숱한 과거의 숙제들이 정리되었을 것 아닌가.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1961년부터 한일협정을 체결한 65년 사이 5년에 걸쳐 6개의 일본 기업으로부터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 총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600만 달러를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일본에 쌀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김종필이 재일 한국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한다.(<위키백과> 참조)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시민, 학생들의 시위도 많았다. 이른바 6ㆍ3항쟁이 그것이다. 한일협상반대운동은 1964년 6월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상에 반대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1964년 6월 3일 박정희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당시 절정에 이른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한일‘굴욕’외교라고 비판하는 학자와 지식인이 아직도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듣자 하니 이명박 전 대통령도 6ㆍ3항쟁의 ‘주역’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한일국교정상화는, 일제 식민지 35년을 뒤로 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통과의례였다고 하자. 그런데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하여 어떤 총리는 사과 하고 어떤 총리는 이를 뒤엎고 또 어떤 수상은 ‘통석의 념’ 어쩌고 하면서 사과하고 어떤 수상은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이런 식으로 지난 세월 동안 되풀이하여 왔다. 국교를 정상화할 때 깔끔하고 깨끗하게 매듭짓지 못한 탓이다. 우리나라를 깔보고 갖고 노는 것이다. 마치 고양이가 생포한 쥐를 갖고 놀듯이. 그래서 나는 시일이 더 걸렸더라도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국가차원과 개인차원의 배상을 끈질기게 요구하여야 옳았다고 보는 쪽이다.
그런 일본에 대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3ㆍ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했다. 그해 8ㆍ15경축사에서는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와 상대방 아픔을 배려하는 자세가 없으면 미래로 가는 신뢰를 쌓기 어렵다.”며 일본측의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여 양국 관계를 차갑게 만들었다. 2014년 8ㆍ15경축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때 한일관계가 건실하게 발전할 것”이라고도 했다. 압박의 강도가 더 세졌다(대통령 발언은 <한국일보> 참조).
그런데 그사이 1년도 안 되어 무엇이 바뀌었을까. 박 대통령은 올해 5월 4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고 스스로 과거사 문제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라고 했는데, 한 달 뒤인 6월 14일 같은 회의에서는 “현안은 현안대로 풀어가면서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방안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비서관들이 머리가 꽤나 아팠을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헷갈렸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6월 22일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장에서는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통령 취임 이후 냉랭하기만 하던 한일 관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궁금하다. ‘과거사의 무거운 짐’이라니.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아야 할 사과와 반성과 배상 같은 게 무거운 짐이기만 한가. 무거운 짐은 일단 내려놓고 보자는 심산인가. 그것은 역사적, 민족적 치욕과 피해와 관련하여 정당하고 포기할 수 없는 요구이다. 아무리 무거워도 짊어지고 가야할 우리 민족의 숙명 아닌가.
그건 그렇고, 이렇게 양국 정부가 나서서 한일국교정상화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생각해 본다. 일본 입장에서는 35년이 넘는 무단 무력 총칼 지배에 대하여 무상원조와 차관 몇 만 달러 지원으로 마무리하였으니 경축하고 좋을 일이겠지.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우리나라는 무엇인가. 민족이 결딴날 만한 지배를 받았는데도 고작 돈 몇 푼에 민족의 자존심과 생명과 영혼마저 팔아넘긴 꼴 아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날을 기념하자고? 그런 날에 “앞으로 50년을 향하여 나아가자.”고? 국가 간 외교에서 불가피한 점은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본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며 한일 관계를 차갑게 몰아붙인 것에 대하여, 나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때만 되면 헛소리를 지껄이고 엉뚱한 짓을 해대는 일본에 대하여 확고부동한 우리의 입장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했다. 독도와 관련하여 너무 유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에 담긴 정신을 잇는 것이든, 느닷없이 독도에 나타나 양국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이든, 일관된 논리와 정서, 그리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심지가 얼마나 오래갈지, 결국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지 기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더욱 긴장되고 소중할 수밖에 없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지켜보고 있었다.
기대가 있었다면 얼른 포기해야겠고 기대가 컸다면 내가 망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바랄 걸 바라고 기다릴 걸 기다리고 노릴 걸 노려야 했다. 신문, 방송 대부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를 긍정적으로 비중 있게 다뤄주고 있는데 이게 축하할 일이고, 더구나 우리나라가 이를 이런 식으로 기념할 일인지 나는 묻고 싶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일본 아베 총리가 태도를 어떻게 바꾸어 주었는지 진정으로 알고 싶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냉혹한 국제 관계의 현실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201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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