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문학계에 가장 큰 골칫거리로 떠오른 ‘신경숙’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름에 따옴표를 붙였다. 개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명사라는 뜻이다. 언론 기사가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나오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사실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한 번쯤은 생각을 정리해 둘 필요가 없지도 않아 곰곰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도 할 말이 별로 없다. 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문학회 활동도 좀 했고 등단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그런저런 연유로 문학작품, 특히 소설을 제법 찾아 읽는 편인데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내가 아는 신경숙의 작품은 ≪깊은 슬픔≫, ≪풍금이 있던 자리≫, ≪엄마를 부탁해≫이다. 이 중에서 ≪엄마를 부탁해≫는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나머지 둘은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읽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어쩌다 읽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까맣게 까먹었다는 뜻이다.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부석사>는 늦게나마 한 번 읽어 보려고 지난해에 지인에게서 얻어놨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신경숙이 새 소설을 발표했다고 총천연색 광고를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내어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거의.
시기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깊은 슬픔≫, ≪풍금이 있던 자리≫ 같은 소설을 신경숙이 발표할 때 나는 주로 정도상의 ≪친구는 멀리 갔어도≫, 방현석의 ≪새벽출정≫,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소설을 읽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읽고 황석영이나 김주영의 소설을 찾아 읽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신경숙은 나에게 별로인 작가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시대는 엄중한데 한가한 신변잡기 같은 이야기만 쓰는 작가이다.’라고 느낀 것 같다. 윤대녕도 비슷한 이유로 한창 인기를 끌 당시에는 오히려 별로 읽지 않았다. 내 독서 취향과 동떨어진 작가군이라는 말이다.
그중 ≪엄마를 부탁해≫는 눈물깨나 흘리면서 읽었다. 하도 베스트셀러라고 난리치기에 사 읽긴 했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셈이다. 서너 권을 새로 사서 주변에 선물로도 줬다. 그렇게 한 까닭은, 신경숙의 문장력이나 서사적 힘이나 주제의식 같은 데 있지 않았고, 이런 소설 한 편을 읽으면서 모두들 어머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흔을 넘긴 어머니의 신산했던 삶과 삭정이로 변해버린 손가락을 떠올리면서 울었다. 눈물을 닦고 나서 어머니,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었고 당신들을 대하는 내 마음도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경숙에게 고맙다고 생각했다. 그것뿐이다.
여성 작가의 소설은 잘 안 읽는데, 그래도 마음의 끈을 자꾸 끄는 작품은 공지영의 ≪의자놀이≫(르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높고 푸른 사다리≫였고, 김별아의 몇몇 에세이와 역사 소설류, 이를 테면 ≪미실≫, ≪논개≫, ≪백범 김구≫ 같은 종류였다.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웃프게 읽었다. 어쩐지 신경숙은 읽히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깊은 슬픔≫이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으며(또는 읽다가 접어놓으며) 느꼈던 밍밍하고 물컹물컹하고 간질간질하고 흐릿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번 표절 논란에 대해 생각이 좀 가지런해진다. “그래서 뭐?” 이것이다. 신경숙이 한국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품은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제법 팔리는, 그는 ‘글로벌 작가’라는 데 대해서도 이견을 달 수 없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내 기준으로만 보면, 국내 최고 작가 반열에 오르기는커녕 그저 그런 ‘한가한’ 소설 나부랭이나 끄적거리는 작가일 뿐인데 왜 온 세상이 호들갑일까, 잘 모르겠는 것이다. 시대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작가로서 무엇인가 말해야 할 때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그것부터 묻고 싶어진다. 표절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검증하고 따지는 것은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듣고 난 뒤 나중에 해도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려면 그의 대표 작품을 몇 편이라도 더 찾아 읽어보고 표절됐다고 하는 다른 작품도 좀 읽어본 뒤 객관적 논리를 갖추어 이야기하는 게 맞겠지만, 그냥 내가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대로 몇 마디 적어놓는 것도 아주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몇 글자 적어 놓는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도 제대로 안 읽은 놈이 뭔 말이 그리 많으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러게요!”라고 말해줄 수는 있겠다. 201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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