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아파트 2층이다. 1층에서 들어오면 현관이 있고 그 현관의 지붕이 있다. 이곳을 가리키는 말이 있을 텐데, 잘 모르겠다. 지붕 위는 빈 공간이다. 소방법이나 건축법을 따지자면 여기에 무엇을 두면 안 되는지, 둬도 괜찮은지 하는 규정이 있을 텐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 대개 에어컨 실외기나 버릴 장소가 모호한 장독대 같은 것을 내놓고 있다. 제법 큰 나무를 옮겨다 놓고 비를 맞게 하는 경우도 더러 봤다.
우리집 옆 현관 지붕에는 우리의 양심이 버려져 있다. 2004년 6월 이사올 때부터 있던 장독대는 그렇다 치자. 빈 화분, 자전거 타이어 튜브, 고장난 우산, 아이스크림 봉지, 그리고 수없이 많은 담뱃갑과 담배꽁초, 라이터, 맥주 깡통, 음료 깡통, 속옷, 양말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쓰레기 백화점 같다. 우리의 양심이 쓰레기라는 가면을 쓴 채 마구 버려져 있다. 에어컨 실외기도 있는데 우리것이다. 올 여름에 옮길 계획이다.
이 공간은 비가 오면 물이 고이게 돼 있다. 쓰레기가 없을 때는 아파트 마당으로 물이 그대로 빠져 나간다. 쓰레기들이 조그마한 물 구멍을 막아버리면 물은 그대로 고인다. 고인 물 때문에 담배꽁초가 풀어지고 담뱃갑과 쓰레기들이 썩어 문드러진다. 오뉴월 장마가 지나고 나면 썩는 냄새가 심해진다. 가장 가까이 사는 집은 우리 옆집인데 이런 일에 관심이라곤 없는 분들이다. 그다음 가까운 집은 우리집이다. 우리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서너 차례 이곳을 청소했다. 솔직히 내가 이런 데 더욱 신경 쓰는 것은 에어컨 실외기 때문이다. 이사 온 지 5년은 더 지난 뒤에 에어컨을 샀는데 청소는 그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더럽고 역겹고 짜증나도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안 하기로 했다. 우리 라인 열 집 가운데 1층 두 집을 빼고 여덟 집, 그중에 분명 한두 집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너무나 뻔한데 십년 넘게 청소를 대신 해줄 수 없다. 3년쯤 전에 흰 종이에 매직으로 ‘제발 쓰레기 좀 버리지 말자. 양심도 없나. 한번 걸리면 공개적으로 쪽팔리게 해주겠다’고 써 붙였는데, 하룻밤 새 누군가 찢어버린 적도 있다. 정말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일 그놈이 힘으로 우격다짐을 하려고 들면 두고두고 피곤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저 파란색 담배를 사 피우는 사람이 스스로 쓰레기를 치울 때까지 경고문을 붙이고 또 붙일 것이다. 빈 화분을 버린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붙이고 또 붙일 것이다. 오늘 붙인 종이를 다섯 장 준비해 놨다. 누군가 찢어버리면 좀더 험한 말도 쓸 것이고 좀더 애교스런 말도 쓸 것이다. 사정도 하고 호소도 하고 부탁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공간이 우리들의 깨끗한 양심의 창고가 되도록 해 볼 생각이다. 우리 아파트 우리 라인 열 집 주인들의 양심을 믿으며…. 아니지, 1층은 빼고 우리집은 포함하여 여덟 집 사람들의 반성을 촉구하며….
201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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