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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대한 내 생각

신호등 맨 앞에 선 자동차 운전자의 임무

by 이우기, yiwoogi 2015. 4. 28.

빨간 신호등이다. 차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선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려면 짧으면 130초 정도, 길면 3분 정도 기다린다. 한낮 진주시내의 경우 많아야 열댓 대가 줄을 서지만, 바쁜 출퇴근 시간에는 스무 대 이상이 비엔나소시지가 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에 운전자는 저마다 바쁘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불을 붙이려 하거나 담뱃불을 끄려 할 것이다. 창문 열고 꽁초를 버리기도 한다. 가래침을 칵! 뱉는 놈도 있다. 라디오 듣는 사람은 이 채널 저 채널 돌려보기도 할 것이다. 음악에 맞춰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톡톡 치기도 하겠지. 요즘은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 보내고 카톡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그 와중에 게임하는 사람도 있겠지. 간밤에 과음한 사람은 길게 하품하거나 아예 졸기도 할 것이다. 출근시간마저 데이트 시간으로 활용하는 연인 카풀족은 그 시간이 그저 고맙기도 하겠지. 저마다 1, 또는 2~3분이 귀중하고 소중하다.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뀐다. 신호등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운전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파란색으로 바뀌기 전에 미리 출발하면 안 된다. 파란색으로 바뀌었는데도 엉뚱한 짓 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도 안 된다. 정확하게 파란색으로 바뀐 뒤, 그래도 다른 방향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차들은 없는지 확인하고 서서히 출발해야 한다. 다음 차가 따르고 다음 차가 따르고... 그렇게 흘러간다. 물 흐르듯이. 한 대씩 한 대씩 흘러가면 된다.

 

맨 앞의 운전자가 웬일인지 파란불로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으면... 바로 뒤차는 어떻게 해야 하나. 빵빵 소리를 내어야 한다. 몇 초 정도 기다려줘야 할까. 망설여진다. 가만히 있자니 세 번째 차가 빵빵거릴 것 같고, 곧바로 빵빵 누르자니 오히려 운전예의도 모르는 사람같이 보일 것 같다. 짧은 순간 갈등이 인다. 두 번째 차 운전자의 갈등은 순전히 맨 앞차 운전자의 잘못이다.

 

길게 늘어선 뒤차, 또 뒤차, 또또 뒤차 운전자 중 누군가는 반드시 저 새끼들 다 뭣하는 거얏!” 하며 빵빵빠앙~ 길게 누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세 번째 이후의 차 운전자는 맨 앞차 운전자뿐만 아니라 두 번째 차 운전자도 싸잡아서 욕을 끌어 부어준다. 물론 경적소리로. 그제서야 딴 짓에서 깨어난 앞차 운전자들이 서둘러 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는다. 바쁜 출근길을 애써 여유 있게 나섰던 수많은 운전자들이 침을 삼키며 욕도 삼킨다.

 

맨 앞에 선 차의 운전자는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자기가 원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자기 한 사람의 실수나 판단착오나 딴 짓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기분 좋은 아침 출근길을 잡칠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맨 앞에 선 자는 그런 임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신호등만 뚫어져라 쳐다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신호의 흐름을 놓치면 뒤통수가 간지럽게 돼 있다.

 

학교 급식 줄을 설 때도, 시내버스 타는 줄을 서서도 마찬가지다. 맨 앞에 선 자는 앞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눈여겨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로 인하여 자기의 뒷사람들이 작은 혜택을 받을 수도 있고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조직으로 치자면, 학교에서는 반장의 노릇이고 동네에서는 이장의 구실이고 지방자치단체장이 다 이와 같다고 봐도 되겠다. 시장이나 군수, 도지사가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비슷하다. 맨 앞에 있다는 것은 뒤에 선 사람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다는 것도 아니고, 인격이나 인품이 뛰어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과정을 거쳤든 간에 지금 현재 맨 앞에 서 있다는 그것이 중요하다. 파란불로 바뀌면 좌우를 한 번 더 살펴본 뒤 서서히 출발하면 된다. 그러면 뒤의 모든 차들이 군소리 없이 졸졸졸 따라오게 돼 있다. 그게 그리 어려운가.

 

꼭 뒤차가 빵빵 해야 하고, 그 뒤차가 또 빵빵빠앙 해야 정신을 차리는가. 뒤에서 따르는 차들은 피곤하고 고달프고 짜증난다. 그래서 넓은 길로 나서면 제 정신 못 차리던 차를 잽싸게 추월해 버리는 것이다. ‘다음 신호에서는 내가 맨 앞에 서서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는 것일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2015.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