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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100%의 맛, 돼지고기두부찌개

by 이우기, yiwoogi 2015. 3. 23.



돼지 앞다릿살을 한입 크기보다 조금 작게 썰어 넣고, 두부, 버섯, 양파, 땡초,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어 대충끓인, 국 같기도 하고 찌개 같기도 한 음식은 나에겐 영혼을 울려주는 음식이다. ‘소울 푸드라고 할까. 간을 소금으로 한 것 같은데 먹어 보면 간장 맛도 난다. 첫눈에는 반찬이고 조금 먹다 보면 소주 한잔을 부르는 안주이다.

100% 나를 감동시키는 이 국(이라고 할까)은 결혼 전 아버지가 자주 해주던 음식이다. 오후에 출근하던 나는 오전 내내 간밤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뒹굴었다. 어머니는 시장에 나가고 아버지는 이웃마을 갔다가 점심때쯤 돌아왔다. 무엇을 좀 먹어야 속도 편해지고 머리도 맑아질까 싶은 시간, 아버지는 주방에서 뭘 조물조물 만지고 탕탕탕탕 칼자루로 마늘을 찧는가 싶다가 보글보글 무엇을 끓여 나를 부른다. 부르기 전부터 코가 뻥 뚫리고 입에 침이 고이며 정신이 맑아지게 하던 그것. 강력한 식욕 본능을 느끼며 나는 아버지의 밥상에 앉곤 했다.

짭짜름하면서도 고소한 이 음식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숟가락은 쉴 새 없이 냄비 속을 드나들었다. “맛있나?”라고 물으면 길게 대답할 게 뭐 있겠나. “!” 한마디면 족했다. 어떤 때는 그 대답마저 숨 가빠 그냥 고개만 끄덕인 적도 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버지는 몇 번이고 이 찌개(라고 할까)를 끓여주었다. 어떤 때는 양은냄비에 짜글짜글 끓인 뒤 소주 한 병을 밥상에 얹어놓고 마주앉아 먹고 마시곤 했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얻어먹은 일도 많다. 아버지는 가만 있거라. 이건 내가 끓일게.” 그러고는 며느리는 손도 못 대게 하고는 직접 한 냄비 따끈따끈하고 매콤하게 끓여 내왔었다. 물색없는 나도 , 그건 아버지가 끓여주세요!”라며 능청을 떨었다. 재료라고 해봤자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맛을 내는지 신통방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아내도 집에서 가끔 끓여주곤 했다. 아버지 솜씨에 근접한 것으로 봐서 시아버지께 전수받은 게 틀림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퇴근 후 속이 허전하여 뜨겁고 맵고 고소하고 달달하고 짭짜름한 그 무엇이 자꾸 당기는데, 아내는 돼지고기두부찌개(그래, 이게 이 음식 이름이라고 해 두자)를 끓였다. 나는 이것저것 도와준다는 핑계로 안절부절못하여 주방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찌개가 완성되길 기다렸다. 이런 음식은 먹어보기 전에 딱 보면 안다. 꼭 먹어봐야 맛을 아나. 눈으로 보면 한눈에 안다. 그러니 먼저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기념촬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물을 한 숟갈 떠서 후우 불고는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잠시 동안 아버지를 떠올렸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모르는 못난 아들이 새벽까지 술독에 빠져 있다가 해가 중천에 뜨도록 퍼질러 자는데도, 꾸지람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두말없이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와 직접 뚝딱 끓여 주시던 그 맛과 향과 정성, 그리고 사랑이 고스란히 우리 집 냄비에 담겼다. 아내는 언제 이런 신비로운 기술을 익힌 것일까.

맛에 100%가 있을까. 재료들이 각각 맛과 식감을 내면서도 서로 뒤엉겨 분리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듯하면서도 향이나 맛이 개별적 독창성을 잃지 않는 맛.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고소하면서도 얼큰하고 깊은 맛. 매운 것은 입을 깔끔하게 하는 정도면 족하고 빛깔마저 알록달록하여 오감을 만족시키는 맛.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과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영혼을 적시는 그런 맛이 있을까.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소울 푸드라고 할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오늘 먹은 돼지고기두부찌개를 소울 푸드라 할 것이다. 배부르고 마음 넉넉한 밤이다. 2015.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