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一生一大)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을 이르는 말이다. ‘가장’은 단 하나, 으뜸, 최고, 처음, 맨 끝 같은 것을 이르는 말이므로 한 사람이 이 말을 여러 번 쓰기는 쉽지 않다. 죽을 때쯤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아, 그건 내가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였어.”라거나 “그건 나에게 일생일대의 기회였어.”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좀 심각한 일을 저질렀거나 걸작을 완성했거나 하는 경우라면 죽기 전에라도 씀 직한 말이다.
2004년 3월부터 지금의 직장에 다니고 있다. 몇 달 안 됐을 때 총장님이 참석한 어떤 행사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 손님까지 모신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기라성 같은 분들이 무대 전면에 섰고 나는 “김치~” 하면서 셔터를 눌러야 했다. 사진기를 눈에 갖다 댔다. 그런데 앞이 깜깜한 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정신이 아뜩했다. 뭐가 문제지? 나는 이런 기계에 대해 잘 모르는데…. 2~3초쯤 흘렀을까. 2~3년은 흐른 것 같았다. 아니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때 총장님이 외쳤다 “야! 이 팀장, 카메라 마개를 안 뗐잖아!”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할까.
어제는 좀 바빴다. 바쁜 단계를 5단계로 나눌 수 있다면 3단계에서 4단계쯤 되는 수준이었다. 오후 2시 행사 촬영하고 사무실 들어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 그중 잘 나온 사진을 골라 홈페이지에 올리고 행사 주관부서에 보내고 언론사에 보내고…. 오후 5시 행사 촬영하고 사무실 들어와 컴퓨터로 옮기고 그중 잘 나온 사진을 골라 홈페이지에 올리고 행사 주관부서에 보내고 언론사에 보내고…. 오후 7시에 무슨 입학식이 열리는 동방호텔로 향했다.
행사와 행사 사이의 시간은 널널한 편이었으나 걸려오는 전화 받아야 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들어가 봐야 하고 카톡이나 문자 오고가는 일도 적지는 않다. 다 일이다. 아무튼 동방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6시 15분쯤 되었으니 여유를 가질 만했다.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오늘 낮에 한 일과 저녁에 할 일과 내일 할 일 들을 생각하며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고선 6시 45분쯤 행사장에 들어갔다. 행사를 주관하는 분들은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하는 편이다. 사진 한 장 잘 남기는 게 중요하니까.
사진기를 가방에서 끄집어내고 플래시를 꽂았다. 버릇대로 미리 한 장 찍어보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아! 나는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사진기 화면에 ‘메모리카드가 없습니다.’라는 글자가 깜빡였다. 5시 행사를 마친 뒤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면서 메모리카드를 컴퓨터에 꽂았는데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이 당혹스런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호텔 사무실로 달려가서 혹시 메모리 카드를 빌리거나 살 수 있느냐 물었다. 당연히, 있을 수 없지. 별 수 없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분께 여차저차해서 이러저러하게 되었다 이르고 줄행랑을 놓았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데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할까. 요즘 왜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는 걸까. 201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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