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을 흔히 한다. 많은 생선 가운데 봄에는 도다리가 으뜸이라는 말이다. 가을엔 전어가 최고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는 집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한다는 말이 있다. 도다리는 회로도 곧잘 먹지만 쑥국을 끓일 때 넣어 먹기도 한다. ‘도다리쑥국’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유명한 봄 반찬이다. 해마다 2월 하순부터 4월까지 도다리쑥국을 몇 번 먹어왔다.
봄에 알을 낳은 뒤 새살이 돋아 담백한 맛이 일품인 자연산 도다리와, 겨우내 얼었던 땅을 쑥 비집고 나와 봄바람을 맞으며 봄 햇살을 받으며 자란 쑥과, 집된장을 적당히 넣어 끓여 내면 도다리쑥국이 완성된다.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어쩐 일인지 올해는 도다리쑥국 먹을 일이 없었다. 지난주 월요일 저녁 본가에 갔더니 어머니 혼자 생선을 구워 드시기에 무슨 고기인지 물었다. 도다리라고 한다. 도다리라면 쑥국을 끓이지 않고 왜 구워 드시는지 물었더니, 토요일이나 일요일 자식새끼들 오면 같이 끓여먹으려고 서너 마리 사놨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우선 한 조각 구워 먹는 중이란다. 지난 토요일 새로 만든 액자 걸어드리느라 잠깐 다녀갔다고 일요일엔 가보지 않은 것이 죄스러웠다.
우리는 무슨 일에, 무슨 약속에, 무슨 모임에, 무슨 나들이에, 늘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이번 주 아니면 다음 주에 가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말지만 어머니는 행여 자식들 오면 둘러앉아 맛있게 먹을 그 무엇을 늘 준비하곤 했다.
월요일 저녁부터 나는 오늘을 기다렸다. 정말 그사이에도 도다리쑥국 먹을 일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어디에선가 쑥 향기가 나는 듯하고 누군가는 도다리쑥국을 먹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멸치로 국물을 우려낸 뒤 도다리를 넣고 쑥을 넣고 된장을 풀어 구수하게 끓인 국이 눈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입에 군침이 돌고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 짓기도 했다. 그동안 먹어본 도다리쑥국 가운데 가장 맛있었던 게 어느 것이었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흘려보냈다. 지난 일주일은 틈만 나면 도다리와 쑥과 된장이 환상의 궁합으로 빚어내는 도다리쑥국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르고 행복했다.
드디어 오늘 오후 본가로 갔다. 어머니는 오전에 뒷산에 올라 쑥을 캐 놨다. 둘이 마주앉아 쑥을 가렸다. 쑥은 작고 앙증맞았으며 잡티가 거의 없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쑥을 가지런하게 캐 모았을 어머니 정성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머니는 또 돈나물과 겨울초도 구해 놨다. 돈나물도 다듬었다. 그리하여 도다리쑥국과 돈나물초무침과 겨울초겉절이가 완성되었다. 직접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친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들이었지만, 그 맛은 일등 일품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큰 국그릇 하나를 깨끗이 비우고 아들이 남긴 국물까지 싹 들이켰다. 돈나물초무침은 입에 착착 감겼다. 눈도 즐겁고 입도 기쁘고 정신마저 숭고해지는 느낌이었다. 봄을 마음껏 먹고 나니 기운이 불끈 솟는 듯하다. 봄은 어머니의 사랑이고 정성이고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그렇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할머니일 뿐인 어머니는 항상 자식들에게 줄 그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다리는 사고 쑥은 캐고 돈나물은 뜯고 겨울초도 캐서 항상 그렇게 준비하고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때는 생선을 또 어떤 때는 돼지고기를, 어머니는 돼지고기 소고기는 아예 드시지를 못하는데도, 사 놓고 우리를 기다린 것이다.
우리는 그냥 가서 있는 대로 먹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뜻대로 제대로 잘 되지 않던 것이었다. 누구든 웃으며 찾아가기만 하면 그렇게 좋아하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 주말은 얼마나 쓸쓸할까 생각해 본다. 그 마음 알려고 해도 알 리 없고 안다고 해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어머니는 늘 그렇다. 201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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