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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밥 같이 먹는 친구

by 이우기, yiwoogi 2015. 3. 15.

초중고등학교 때 도시락을 싸다녔다. 고등학교 땐 두 개였다. 그땐 단체급식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안간국민학교 다니던 1974년부터 78년까지는 교실 한가운데 갈탄 때는 난로가 있었는데, 그 위에 도시락을 대여섯 개 올려놓기도 했다. 맨 밑 도시락은 좀 타고, 맨 위 도시락은 미지근해질 정도는 되었다. 점심시간 되면 짝지와 동시에 뒤로 돌아앉아 바로 뒤 친구들과 마주보고 도시락을 깠다. 어묵볶음, 멸치볶음, 마늘종볶음, 무짠지, 오이짠지, 검은콩볶음, 김치, 단무지 들이 반찬이고 아주 가끔 밥 위에 달걀구이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기도 했다. 달걀말이나 소시지를 구워 넣어준 날은, 그땐 몰랐지만, 누구의 생일이었을 것이다. 보온도시락도 싸다녔는데 점심시간까지 따뜻하던 밥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국도 넣어 다녔다. 주로 미역국, 콩나물국, 시래깃국이 대세였다. 친구들도 어슷비슷했다. 가끔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도시락을 검사했다. 혼식 분식을 적극 장려하던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명령대로 국민학교 학생부터 도시락에 보리가 섞였는지 콩을 섞어 먹는지를 살피던 것이었다. 우리는 참말로 웃었다. 쌀밥을 먹고 싶어도 쌀이 없어서, 쌀이 아까워서 못 먹을 지경인데 무슨 혼식 분식 장려란 말인가. 농사는 우리가 짓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싸온 반찬을 가운데 모아놓고 웃으며 떠들며 밥을 맛나게 먹었다. 불고기, 소시지, 햄 따위를 자주 싸오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부러워하거나 자기의 가난한 반찬을 미안해하지 않았다. 모르지. 아예 그런 마음까지 없진 않았겠지만 그런 일로 주눅들거나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이리저리 나눠먹으며 깔깔대며 즐겁게 점심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죽 그랬다. 그래서 키가 나란한 친구들끼리 더 가까이 지내기도 했다. ‘벤또 함께 나눠먹던 사이의 우정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3교시나 4교시에 체육수업을 하러 운동장에 나간 뒤 교실을 지키던 주번이 남의 도시락 반찬을 몰래 꺼내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처음엔 눈 흘기고 화내지만 한두 시간만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떠들었다. 네 형제가 동시에 학교를 다닌 우리 집에선 아침마다 도시락 싸고 챙기는 일이 거의 전쟁이었다. 어쨌든 마주앉아 도시락 까먹던 친구들이 그립고 그 시절이 정겹다.

학교에서 단체급식을 하게 된 후 어머니들의 노동이 줄어들었다. 한 달 급식비 4~5만 원쯤 내면 되니 얼마나 좋아진 세상인가. 아이들도 이런 반찬 저런 반찬을 골고루 먹게 되니 영양의 균형을 맞추며 잘 성장하고 있다. 직접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급식소에서 장난치며 웃으며 즐겁게 밥을 먹을 것이다. 키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어떤 땐 같은 반 친구끼리 또 어떤 땐 작년에 같은 반이던 친구와 나란히 또는 마주앉아 반찬을 집고 국을 뜰 것이다. 그들 사이엔 평등이 있고 우정이 있고 미래의 꿈이 있다. 평등, 우정, 꿈 같은 건 우리 교육이 후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급식비를 제대로 내기 힘든 가정이 있을 것이다. 나라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 하는데, 아이 셋이 동시에 학교에 다니면 다달이 부담이 적잖을 것이다. 그건 농촌지역이나 도시지역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그랬다. 어쩌다 보니 통장에 잔고가 없을 때가 잦았다. 며칠 지나면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아이 점심 도시락도 싸지 못한 채 학교로 쫓아 보낸 것만 같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무상급식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보수도 진보도 모두 동의하는 정책이었다.

이 무상급식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다. 급식비. 교육청 예산으로는 무상급식을 종전대로 못할 지경이고 지자체에서는 더 지원해 줄 수 없다고 하고. 나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들의 논쟁으로 그냥 먹을 수 있던 아이들 밥을 언제부터 돈 내고 먹으라고 하는 건 어른들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먹는 것 끝에 마음 상하는 게 얼마나 오래 가는지 안다면, 이러면 안 된다. 진주 시내지역 중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우리는 무상급식의 혜택도 별로 보지 못했는데, 혹시 이제 좀더 세상이 나아지면 시내지역 학교에서도 무상급식이 되려나 했는데 물 건너가는 것 같다.

경상남도는 각급 학교 무상급식에 사용될 도비 257억 원과 시군비 386억 원 등 모두 643억 원을 무상급식 사업에 지원하지 않고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름은 바우처사업, 맞춤형 교육지원사업, 교육여건 개선사업 등 거창하지만 실상은 부모가 가난해서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학원비 지원사업이다.

경남에서 가난하기 때문에학원비를 지원받아서 아이들이 공부하려면 4인 가구 기준, 월 실제소득이 250만 원이 안 된다는 증명서를 내야 한다. 즉 자신의 부모가 돈을 잘 벌지 못해 집안이 가난하다는 가난 증명서를 내야 한다. 가난 증명서에는 소득, 부동산재산, 금융재산, 심지어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의 가액을 증빙하는 서류까지 필요하다고 한다.

더구나 이 가난증명서는 학원비 지원을 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학원비를 지원 받을 때는 읍면동사무소에 관련 서류를 내며 지원신청을 하고, 아이가 급식비를 내지 않고 학교에서 밥을 먹으려면 읍면동사무소에서 발행한 가난증명서를 또 학교에 내야 한다. 결국 학원에도 학교에도 난 가난한 집 자식입니다.’를 광고하면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으라는 것이다.(인터넷뉴스 <신문고>에서 인용)

역사가 진보한다는 말을 안 믿는다. 퇴보하거나 아니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것 같다. 그래서 빈다. 우리 아들이 혹시 자기 반에 있을지 모르는 무상급식 지원 대상 친구를 다르게 보지 말고 똑같은 친구로 대하고, 아니 그보다 먼저 그런 사실 자체를 전혀 모른 채 학교를 졸업하게 되기를 빌어 본다. 또 빈다. 제발 아들 졸업할 때까지는 내가 정상적으로 직장을 다녀 점심 밥값 때문에 부끄러운 일 당하지 않기를.

한 가지 더 빈다. 제발 아이들 밥 먹는 것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갑론을박하지 말기를. 그건 이미 4년 전에 새누리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결론지은 일 아닌가 말이다. 무상급식에 반대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주민투표까지 했지만 정작 투표함 뚜껑도 열어보지 못하고 시장직을 내놨던 일을 벌써 잊었는가. 그게 국민의 정서요 여론 아니었는가 말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201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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