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자르는 연모는 톱이다. 톱은 톱니가 생명이다. 톱니는 날과 날어김으로 이루어져 있다. 날어김이란 톱날이 받는 힘을 덜기 위해 톱니를 좌우로 번갈아 어기는 것을 말한다. 굵은 나무를 자르고 나면, 아버지는 반드시 줄로 톱날을 세웠다. 톱날을 줄로 쓸어 놓으면 다음에 쓸 때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마루 끝에 양반다리로 앉아 톱자루를 왼쪽 무릎 아래에 눌러 놓고 톱날은 오른쪽 무릎까지 걸쳐 놓는다. 여러 번 쓸기를 한 뒤 다시 날어김을 하여 제 구실을 다하도록 오랫동안 정성을 들였다.
톱은 줄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목숨을 이어가게 된다. 톱니가 뭉개져 버린 톱은 그날로 끝장이다. 톱질 자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줄은 톱의 은인이다. 줄은 톱을 만든 쇠보다 더 세다. 강철로 만든다는데 그것의 속성까지는 다 알 수 없겠고, 무뎌진 톱니를 똑바로 세우는 데는 줄만한 게 없다.
낫날도 쉽게 무뎌진다. 조선낫은 그나마 나은데 왜낫은 하루만 알뜰히 쓰고 나면 못 쓰게 될 정도였다. 왜낫은 공장에서 생산돼 풀베기용으로 보급된 일본식의 얇고 날카로운 낫이고, 조선낫은 대장간에서 쳐서 만든 것을 말한다. 농사지을 때 어른들은 왜낫은 잘 쓰지 않았을 뿐더러 어쩌다 쓴다 해도 날이 나가면 아예 갖다버렸다. 왜낫은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이 소꼴 벨 때나 소용 있는 연모였다. 조선낫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낫은 어른들이 대를 찌거나 굵은 나뭇가지를 벨 때, 또는 나뭇등걸을 찍을 때 썼다. 조선낫도 날이 무뎌지는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농사철이 다가오면 낫이란 낫은 죄다 꺼내놓고 석류나무 아래 수돗가에서 하염없이 낫날을 갈았다. 부엌칼도 갖고 오라고 하여 슥삭슥삭 칼날을 갈았다.
숫돌은 자연으로 된 수성암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태어나 철들 때부터 숫돌은 집에 있었던 것 같다. 진주로 이사 올 때도 애지중지 챙겨 온 재산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수돗가 가장자리에 있다. 숫돌은 못쓰게 된 낫을 새것으로 만들어 준다. 심한 노동으로 망가져 버려질 운명에 처한 낫을 어지간하면 모두 되살려준다.
며칠 전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줄을 판다는 광고가 나왔다. 톱이나 가위, 칼 따위를 갈아 쓰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톱을 쓸 일이 거의 없고 칼은 쓴다 해도 숫돌에 날을 갈아가며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저것이 팔리긴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사꾼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주부를 꾀고 있었다. 나같이 얼빠진 남자들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전화번호를 누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몇 해 전 역시 텔레비전에서 ‘장미칼’ 광고를 보게 되었다. 칼 옆면에 장미그림이 새겨져 있는 그 칼은 무엇이든 자르지 못하는 게 없었다. 김밥을 가지런히 예쁘게 자르는 것에서부터 냉동고기까지, 심지어 쇠붙이도 잘라냈다. 마음이 혹했다. 칼이 잘 안 든다고 하던 아내에게 선물도 하고 부엌일을 즐기는 편인 나도 좀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였다. 칼은 얼마 가지 않아 장미그림이 벗겨져 버렸고 날 끝은 휘어져 버렸다. 그나마 좀 낫다 싶던 가위도 마찬가지였다. 속은 것이다. 저 칼을 사면 평생 부엌칼은 사지 않아도 되겠거니 싶던 알량한 꼼수를 정면으로 찔렀다.
마음이 딴 데 가 있었던 것이다. 나이 마흔 넘어가면서 마음이 늘 콩밭에서 놀았던 것이다. 부엌칼 날이 무뎌지면 정성들여 갈아볼 생각도 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그런 마음은 엷어져 버린 것이었다. 정신도 딴 데 팔려가고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좋은 연모들이 쌔고 쌨는데 서양 어느 나라에서 유래했다는 근본도 없는 칼에 정신이 팔린 것이다. 편리하고 간단하고 쉽고 단순한 것만 좇아온 결과였다. 더디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정도로 걷자 했는데, 그런 다짐은 연기 되어 사라지고 안개 되어 흩어져 버렸던 것이다.
여려진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채근해줄 줄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정신을 바로잡아 줄 숫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하고 생각해 보니, 마음의 날을 쓸어줄 줄은 책이요, 무뎌져 버린 정신을 갈아 줄 숫돌 또한 책이 아닌가 여겨졌다. 역사책을 읽어야 오늘 내가 있기까지 정과 반이 엎치락뒤치락 뒤엉겨온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역사책을 읽으면 민족에 반역을 저지르고 국민을 배반한 역당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되살아나 버젓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게 된다. 문학을 읽어야 마음에 풍년이 들고 상상은 날개를 달게 된다. 제대로 된 문학을 읽으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 짐승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며 사람이 사람 노릇 못하면 ‘마소에 갓 고깔 씌운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봄바람의 설렘과 가을바람의 쓸쓸함도 더 깊이 느껴질 것이다. 그건 때로 인생이다.
마음의 날을 바로 세워 딴 데 한눈팔지 않게 해주는 줄이 필요하다. 돈의 노예가 되고 일의 노리갯감이 되어버린 피곤한 일상에서 전후도 모르고 좌우도 돌아보지 못하는 썩어빠진 정신의 정수리에 얼음덩어리를 쏟아부어 주는 숫돌이 필요하다. 그것은 책이다. 독서이다. 독서는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게 해주며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줄, 우리 사회의 숫돌을 찾아 나서야겠다.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맛이 좋아도 많이 먹으면 해가 생긴다. 많을수록 더욱 유익하고, 오래 되어도 폐단이 없는 것은 독서뿐이다.”(박지원의 <원사>) “독서는 정신을 기쁘게 함이 가장 좋고, 그다음은 받아들여서 활용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해박해지는 것이다.”(이덕무 <이목구심서>) -정민 ≪오직 독서뿐≫ 231쪽, 268쪽에서 인용 201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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