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 자막에서 ‘어마무시하다’라는 말을 봤다.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도 이 말은 자주 보인다. 날마다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에서도 이 말은 흔히 쓴다. 나는 아직 직접 쓴 적은 없다. 처음 말로 들은 건 몇 해 더 된 것 같다. 처음엔 “엄마를 무시해버리자”라는 말인가, 아니면 “엄마가 무시무시하게 무섭다”는 뜻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이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마어마하다’와 ‘무시무시하다’를 줄인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참 무디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지난해 이맘때 끝난 연속극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전지현)가 이 말을 자주 썼던 것 같다. 이 극을 안 봤으니 몰랐지. 연속극 작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 말을 쓰는 것을 보고 대본에 집어넣었을 것이고, 평소 이 말을 잘 안 쓰던 젊은이들은 연속극을 보고 배워 쓰게 되었을 것이다. 주고받는 것이 죽이 잘 맞아진 경우라고 하겠지.
찾아보니 ‘어마무시’의 뜻은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하다’는 ‘엄청나고 굉장하다’는 뜻이다. ‘무시무시하다’는 ‘자꾸 몹시 무서운 느낌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마무시하다는 엄청나고 굉장한 것이 자꾸 몹시 무서워진다는 뜻이렷다.
그래놓고 보니 이 말은 꽤 잘 만든 말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엄청나고 굉장한 일도 겪고, 자꾸 몹시 무서워 꿈에 나타날까봐 두려운 일도 간혹 겪는데, 이 두 가지 일을 한번에 당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영화 <괴물>에 등장하는 한강의 그 괴물을 어마무시하다고 하면 될까. 외국영화 <에일리언>도 이 축에 속할까.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 가령 지진이나 태풍이나 지진해일(쓰나미) 같은 걸 어마무시하다고 말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어마무시란 말은 멀지 않아 국어사전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누리집으로 찾아가 봤다. 누군가 “인터넷에서나 방송에서나 현실에서나 사람들이 ‘어마무시하다’라는 표현을 하는 걸 많이 보는데요, 이거 표준어인가요?” 물었다. 국립국어원에서 답했다. “‘어마무시하다’는 ‘어마어마하다’와 ‘무시무시하다’가 결합한 형태로 표준어가 아니다. 다만 21세기 세종계획-한민족언어정보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일부 문학작품에서 사용한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5년 이후부터 구어에서 조금씩 사용한 용례도 확인된다.”고 해놨다. 아직은 표준어가 아니다.
이 말을 일흔다섯 살 어머니와 이야기할 때 섞어 쓰면 알아들을까. 아마 “이 놈이 엄마인 나를 무시하나?”라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한번만 뜻을 설명해 드리면 금방 알아들을 것이다. 쉬운 우리말 두 낱말이 결합하여 조금 다른 뜻으로 탄생한 새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런 일이 널리 퍼지면 국립국어원에서도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을까 싶다. ‘짜장면’이 표준어가 되었듯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이 만들어지는 건 좋은 일이라고 본다. 외국에서 먼저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게차’는 처음엔 ‘포클리프트’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농사를 짓고 공사장에서 등짐을 지던 분들이 딱 보니, 차는 차인데 지게처럼 생긴 게 아닌가. 그러니 ‘지게차’라고 할 밖에. 직접 그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 쓰는 여러 외국어들은 정말 생각 없이, 개념 없이 갖다 쓰는 게 너무 많다. ‘케어’, ‘웰빙’, ‘엣지’ 등등 셀 수도 없다. 남들이 안 쓰는 말을 써야 똑똑해 보인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래야 국제화 시대의 훌륭한 시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머릿속에 서양귀신이 들어앉아 있는 것일까. 어마무시한 세상이다.
2015.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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