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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자동제세동기’를 아시나요?

by 이우기, yiwoogi 2015. 5. 19.

자동제세동기라는 게 있다. 한자로는 自動除細動器라고 쓴다. 미국말로는 ‘AED’라고 하는데 ‘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의 준말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으로서 한글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고, 웬만한 한자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좀 어렵다. 한자는 한 자 한 자씩은 알겠는데 전체 뜻은 모르겠다. 영어는 더 모르겠다. 이게 도대체 뭘 하는 것일까. 맨 끝에 ’()가 붙은 것으로 봐서 무엇을 하는 도구임에는 틀림없겠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얼마 전 서울 지하철에서 출근길에 50대 남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던가 보다. 역무원과 주변 사람들이 긴급히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남자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어떤 여성이 자동제세동기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위급한 상황에서 역무원들도 깜빡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워준 이 여성 덕분에 응급처치를 제대로 했고 이 남자는 목숨을 건졌다. 이 이야기는 언론에 미담으로 보도되기도 했고, 평소 이 기계의 비치와 사용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도 자동제세동기 13대를 비치해 놓았다. 모든 직원을 모아 놓고 시범을 보여가며 교육한 적도 있다. 사용법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지만 한두 번 교육만으로 긴급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전국 지자체나 기관에서 자동제세동기를 확대 설치하고 있고, 기관단체마다 이 기계의 사용법을 교육하느라 바쁘다. 진주시는 자동제세동기를 106곳에 123대 설치해 놓았다가 지난해 1245대 추가 설치하였다. 자동제세동기 168대를 갖춘 것이다.


백과사전을 보니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심장이 매우 빠르고 불규칙하게 수축함으로써 실제적인 심박출량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가늘게 떨고 있는 상태를 심실세동이라 한다. 심실세동의 치료는 심장에 강한 전류를 일시적으로 통과시켜 심장이 다시 정상적으로 박동하도록 하는 제세동술을 시행하는 것이다. 자동제세동기는 심정지 환자의 가슴에 전기 패드를 부착하여 일정량의 전기 충격을 줌으로써 심장 박동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킨다’. 의료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교육을 받으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그래도 어렵다. 이 기계에 대해 교육을 받아본 사람도 자동제세동기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것 같다. 이 기계의 이름은 자동++세동+로 이루어진 것 같다. 세동(즉 심실세동)의 상황을 제거하는() 기계, 그것을 자동으로 해주는 기계라는 뜻 같다. 심장 박동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동심장박동기라고 하면 안 될까. ‘자동, 심장, 박동, 이 말들은 그나마 쉽다. 교육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자동으로 심장을 박동시켜 준다, 심장을 뛰게 해 준다. 이러면 쉽지 않은가. 왜 중요한 기계의 이름을 어렵게 지었을까.


의사들은 달리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과학적이고 의학적이며 합리적인 까닭이 있고, ‘자동제세동기는 가장 정확하게 지은 이름일 것이다. 심장을 박동시키는 것과 세동을 제거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분명히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어렵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내 차 없는 거리에서 자동제세동기라는 말을 적어 놓고 그것이 무엇을 하는 기계인지 어떨 때 쓰는 기계인지 얼마나 아는지 조사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자동심장박동기라고 적어 놓고 똑같이 조사해 보고 싶다. ‘심장자동충격기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전기 충격을 주어 심장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므로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이전에 없던 기계를 만들어 내거나 외국에서 어떤 새로운 기계를 들여올 때는 어쩔 수 없이 새 이름이 필요해진다. 그럴 때는 그 기계를 가장 많이 사용할 사람 입장에서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 ‘지게차는 우리나라에 없던 기계였는데 외국에서 들여올 때 이름은 포클리프트 트럭이었다. 공사장에서 이 낯선 기계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이 포클리프트라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나. 딱 보니, 지게처럼 생겨먹었다. 그래서 지게차로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모든 사람이 지게차라고 부른다.


자동제세동기는 의사들에게는 익숙하고 쉬운 이름인지 모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많이 어렵다. 이 기계를 병원에만 설치하는 게 아니라 공공장소에 수십 대, 수백 대씩 설치하여 누구든 긴급 상황에서 쓰라고 하고 있으니, 누구든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으로 고쳤으면 좋겠다. (2015.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