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F9]야, 고맙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5. 21.

중국고대글자인 한자(漢字)를 배운 건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다. 교과서가 있었다. 한문선생님이 계셨는데, 굳이 따지자면 국어선생님이 한문도 같이 가르친 것이다. 국어 교과서 본문에는 묶음표(괄호) 안에 한자가 적혀 있기도 했다. 시험점수는 4점이었는데 국어과목 50점 가운데 4점을 겨우 차지한 형국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건 중고등학생 시절이지만, 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몇 글자 배우긴 했다. 집 주소 쓰기, 내 이름 쓰기, 동서남북 쓰기, 일이삼사 쓰기 같은 것 말이다.

 

대학 전공은 국어국문학이었으니 한자와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한자가 섞여 있지 않은 교재는 거의 없었다. 교재에 적힌 한자 밑에 연필로 토를 깨알같이 달아서 공부하는 학생도 있었다. 한자를 좀 많이 아는 친구는 다른 학과 학생의 교재에 토를 달아주며 술을 얻어먹기도 했다. 신문에는 지금보다 한자가 훨씬 더 많았다. ‘한글로만 쓰기로 나온 <한겨레신문>은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 더 인기 있었던 것 같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후배 학년 가운데 학교에서 한자를 전혀 배우지 않은 세대도 있다. 어느 교육부장관이 갑자기 한자교육을 폐지한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대학에 들어와서는 그 교육부장관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욕을 해댔다. 자기들을 시험용으로 삼았고, 그 결과는 학력저하로 이어졌다는 주장이었다. 학력저하의 주된 내용은 한자가 섞인 대학교재를 읽기 힘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보기엔, 교육부장관을 자주 갈아치운 대통령과 바뀐 장관마다 교육정책을 이리저리 바꾼 탓이 더 큰 것 같다.

 

한자와 사귀지 않게 된 지 오래 됐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가 한자급수 자격을 따야 한다며 월화수목금토일을 쓸 때 잠시 곁을 지켜준 것을 빼면 거의 담 쌓고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 책에 나오는 한자마저 외면할 수는 없어 무슨 글자인지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있다. 아무튼 나이 쉰을 앞둔 지금 생각해 보면 한자를 다시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스스로 한자를 쓸 일도 거의 없다. 잘 알던 한자를 모르게 됐거나 숙맥처럼 헷갈리게 되긴 했지만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원하지는 않지만, 한자를 써야 할 일이 더러 생긴다. 원고 가운데쯤 어떤 단어를 일부러 한자로 적어 놓으면 눈길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다. 그건 한자 대신 영어단어를 넣거나, 숫자를 넣거나, 그림을 넣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자세대 어른께 간곡한 편지를 써야 한다면 몇몇 단어를 한자로 적을 수도 있겠다. 그럴 때 한자를 맞게 써야 하므로 사전을 뒤져 확인한다. 이럴 때 아주 편리한 게 글자쇠 [F9]이다. [F9]는 낱글자, 단어, 한자숙어 할 것 없이 죄다 찾아준다. 물론 눈여겨보지 않고 글자쇠를 잘못 누르면 안 되지만, 이전에 견주면 더할 바 없이 편리해진 세상이다.


 

만약 [F9]가 가진 기능이 없었더라면 한자를 어떻게 했을까. 손으로 직접 써야 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내용 중 한글 부분은 잘 써놓고 한자 한 글자를 틀려 전체 원고를 다시 쓰는 일도 생겼을 것이고, 틀리지는 않았지만 괴발개발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들어 어떻게 할까 오랫동안 고민하는 일도 더러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한자를 거의 쓰지 않게 된 요즘 세상이 좋다. 한자가 없어도 의사전달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한글로만 적어놓으면 조금 헷갈리는 일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한자를 적어놓고 읽지 못하는 어려움에 견주면 새발에 피도 못 된다. 직업적으로 글을 써야 하고 불가피하게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면 [F9]가 대부분 해결해 준다. 같은 소리로 읽히는 여러 낱말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부득이하게 사전을 봐야 한다. 사전도 컴퓨터에 다 들어 있으니 눈 깜짝할 새 확인할 수 있게 된 세상이다. 내가 받은 원고에 모르는 한자가 있을 때도 [F9]를 누르면 순식간에 한글로 바꿔 준다.

 

한자를 배워야 하나, 언제부터 배워야 하나, 그래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나란히 적어야 하나 하는 문제로 논란이 많다. 이런 논란이 사회적으로 일어나면 신문이나 방송, 잡지 같은 데서 은근히 한자를 더 섞어 쓴다. 유식함을 뽐내려는 심리가 아닐까 잠시 의심해 본다. 몇 해 전 <12>에서는 강호동과 은지원을 아버지와 아들에 빗대어 곰부자라고 불렀다. 그때 화면에 夫子로 나왔다. 틀렸다. ‘父子가 맞다. 이런 실수나 잘못을 없애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나. 한자를 배우고, 그것도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고, 그것도 교과서에 한자를 나란히 적어 억지로라도 보게 해야 한다고 우길 게 아니다. 그냥 한글로만 적으면 된다. ‘곰부자라고 하면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보고 웃을 것이다. 학교에서 한자를 배웠댔자 사회에서는 유식함을 뽐내려고 할 때 한두 번 써먹는 것 말고는 소용이 적다는 말이다.

 

아무튼 나는 늘 [F9]가 고맙다. 우리 주변에 한자를 없애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니까(, 간혹 한자를 퍼뜨리는 일도 한다). 유식을 뽐내려고(또는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쓴 한자를 0.1초만에 한글로 바꿔 주니까. 꼭 한자를 써야 할 경우에도 걱정 안 해도 되니까. 그리하여 나의 무식과 망각을 가려주니까. 글씨를 잘 못 써서 난감해할 일이 없도록 해주니까. 잘 모르는 한자도 쉽게 찾아주니까. [F9]가 무척 고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한두 세대가 바뀌면 일반 컴퓨터 글자판에는 이 [F9]가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 애틋함이 더하여져 더 고맙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2015.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