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저녁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칠순 때 찍은 사진 여러 장을 이리저리 모아서 커다란 액자 하나를 만들어 오너라.” 현재 어머니방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는, 그러고 보니, 어머니 환갑 때 온 가족이 사진관에 가서 찍은 것이다. 대략 15년 전이다. 그 옆에 칠순 때 찍은 액자를 하나 걸어 놓고 싶어진 것이다. 까닭은 모르겠다. 어쨌든 사진 한 장으로 만들지 말고 여러 장을 이리저리 편집해서 만들라 한다. 환갑 때 찍은 사진은 누렇게 때도 끼었고, 특히 손자 손녀들은 많이 자라 못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막내의 막내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다. 중3 우리 아들이 그때는 내 품에 안겨 있으니….
본가에 보관돼 있는 어머니 칠순 기념 앨범을 꺼내 어느 사진으로 액자를 하면 좋을지 여쭈니 이것저것 짚어 주는데, 아버지와 러브샷 하는 사진은 싫단다. 단체 사진에 나오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하면 아버지 모습은 넣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 마음은 읽어낼 도리가 없다. 2012년 9월 돌아가신 아버지가 요즘 자주 꿈에 나타나기에 옆에 물어보니 머리 위에 부부 사진을 나란히 걸어 놓으면 그렇다고 하더라며 어머니 사진은 숫제 작은방으로 옮겨 놓은 터였다. 어머니 칠순잔치라….
2010년 9월에 칠순잔치를 했으니 5년이 다 돼 간다. 우리는 몇 해 전부터 다달이 얼마씩 모아 이날을 대비해 왔다. 아버지와 다섯 살 차이니, 한 5년쯤은 모은 셈이었다. 아버지 칠순잔치도 그렇게 치렀었다. 형제가 모여 어디서, 어떻게 잔치를 할 것인지 의논했다. 처음엔 “아이고, 필요 없다. 안할 거다.”며 손사래 치던 어머니는 “그래, 그럼. 기왕 하려면 멋지게 해주라.”고 했다. 그래서 아시아레이크사이드 호텔 연회장을 빌리게 됐다. 본가와 아들들 집에 있는 앨범을 뒤져 사진을 모아 영상자료를 만들었다. 어머니, 아버지 처녀총각 때 사진부터 최근 모습까지 알뜰히 모았고 ‘어버이 은혜’를 배경음악으로 넣었다. 작업은 경상대 김치봉 선생이 술 몇 잔 값에 도와주었다. 큰손자가 읽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리는 글’ 원고도 쓰고 시나리오도 만들었다. 학생 아나운서를 섭외하여 진행을 맡겼다. 명찰도 네 가지 색으로 만들었다. 손님들이 보기에 명찰 단 사람은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임을 알게 해주고 싶었고, 색을 달리 하여 형제를 구별했다. 그런 일을 내가 기획했었다. 기념품을 제작하고 친척들에게 연락하는 일 따위 많은 세세한 일들은 형제들이 나누어 했다. 사진과 동영상 찍는 일도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로 맡겼다. 사진은 모두 인화하여 두꺼운 앨범에 넣었다. 잘 나온 몇 장은 크게 뽑고 나머지는 자잘하게 인화하여 보기 좋게 만들었다. 아버지 칠순잔치 사진도 앨범에 있으니 두 개가 나란히 꽂히게 됐다. 동영상은 편집하여 시디로 구워놓았다. 성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손님들이 보기에도, 어머니가 보기에도 ‘자식들이 샛길로 빠지지는 않았구나.’ 싶을 만큼은 했지, 싶다. 지금 돌아보면 더 멋지게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땐 하노라고 했다.
손님이 많이 왔었다. 사돈어른들을 비롯하여 친척들과 아버지, 어머니의 친구들이 연회장 가득 찼다. 자리가 모자라 의자를 더 내어오고 나중엔 음식도 좀 모자랐다. 아들 넷, 며느리 넷, 손자손녀 일곱이 함께 찍은 사진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지만 참 평화롭고 행복하고 소박하여 정이 넘친다. 형제들이 노래 한 곡씩 불렀고 아버지도 노래를 불렀다. 손님들은 진정으로 축하하며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 더운 날씨였고 낮이었는데도 술을 제법 마셨다. 어머니는 마지막 무대에서 정말 흥에 겨워 멋진 춤을 선보였는데 그걸 동영상으로 찍어놓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그런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5년이 지난 뒤 사진을 하나하나 다시 본다. 꾸밈없이 흐뭇한 어머니 표정이 보인다. 다행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슬프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은 중학생으로, 중학생은 고등학생으로, 고등학생은 대학생으로 컸다. 아버지, 어머니의 칠십 년 삶을 하루 동안의 사진에서 다 읽을 듯하다. 액자를 잘 만들어 걸어 드려야겠다. 좋아하셔야 할 텐데…. 2015.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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