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졸업식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2. 24.

학위수여식, 그래 졸업식이라고 해야겠지, 졸업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라는 졸업식 노래를 철없이 부르던 때도 있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는 안간국민학교를 다녔고, 6학년 3월에 봉래국민학교로 전학하여 봉래에서 졸업했다. 암된 성격 탓에 1년 동안 친구를 깊이 사귀지 못했고 따라서 가슴에 사무칠 추억도 없었다. 선생님도 촌놈을 애틋하게 여기지 않은 듯하다. 졸업식 때 어머니가 꽃다발을 사왔고 사진을 찍었지만 감흥 없이 무덤덤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는 큰형과 친구가 왔더랬다.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대학엔 합격해 놨으나 웃음이 나거나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학 졸업식은 각별했다. 네 형제들 중,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대학을 갔다. 집안 형편으로는 등록금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처지였으나 운 좋게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학생기자를 하며 고생은 했지만 배운 게 훨씬 더 많았다. 외려 등록금을 더 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보통 1학년 아니면 2학년 마치면 군대를 가곤 했다. 학생기자 신분을 유지하며 한 학년이라도 더 장학금 혜택을 받기 위해, 꼭 그것 때문만이라고 할 순 없지만, 3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그때가 19896월이다.

825코스모스 졸업식’(이런 말도 사실 대졸자만 아는 말이다)을 앞두고 7월 초에 경남일보사에 입사했다. 월급은 많지 않았다. 졸업하기 전에 기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른들에게는 기쁜 선물이었을 것이다. 말이 대학생이지 만날 최루가스 온몸에 묻히고 다니거나 아니면 새벽에 기어 들어가 수돗가에 토악질하던 못난 아들 아니었던가. 대학 4년 동안 장차 무엇이 될지 몰랐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걱정스레 물으면 대답을 피했고 술에 취해 물으면 맞받아 짜증부터 냈다. 4학년 1년 내도록 정독실에서 태백산맥, 장길산, 빙벽같은 10권짜리 소설만 골라 읽고 있었다. 그런 내가 졸업을 하게 됐고 취직도 했다.

졸업식 날 아버지, 어머니는 난생 처음 대학이라는 데를 왔다. 커다란 건물 몇 개와 딸린 건물 두엇이 있는 학교만 보아왔던 어른들인데도 용케 길을 잃지 않고 졸업식장을 찾아왔다. 이런저런 눈치 때문에 졸업 앨범 사진을 아예 찍지 않았고, 그래서 흔히 대졸자가 있는 집 거실에 걸려 있게 마련인 학사모 사진도 없고 더더구나 졸업앨범도 없는 나는, 아버지에게 검은 가운을 입히고 어머니에게 학사모를 씌워 사진을 두어 장 찍는 것으로 만족했다. 철이 덜 든 나는 아버지, 어머니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고, 그러다가 학교 앞 단골 분식점 느티나무로 점심 먹으러 나갔다. 더운 여름이었다. 시원한 막걸리가 당겼다.

희희낙락 들떠 있던 나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걸음을 딱 멈추었다. 사천에 있는 어느 회사에 다니던 큰형이 바로 앞에 나타난 것이다. 동생이 대학 졸업이라는 것을 한다고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었다. 휴대폰이 있나 자가용이 있나. 그저 가면 있겠거니 하고 무작정 달려온 것이다. 졸업식 장면 구경은커녕 사진기도 들고 있지 않아 기념할 만한 사진도 못 찍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버지, 어머니는 벌써 귀가했다. 미안했다. 그 미안한 마음은 가슴 한구석 졸업이라는 앨범에 진한 색깔로 염색되었다. 그래서 졸업철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큰 빚을 진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큰형에게도 나는 철없는 자식이요 동생이었던 것이다. 일 년 내내 친구들과 놀다가도 졸업식 날엔 가족부터 챙겨야 했는데 나는 도대체 그 긴 세월 동안 무얼 배운 것이었을까.

그 뒤로도 졸업식만 생각하면, 졸업철만 되면 경상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딱 마주친 큰형의 표정이 생각난다. 아쉬움, 미안함, 안타까움, 놀람 그리고 약간의 섭섭함 같은 감정이 복잡 미묘하게 뒤섞인 그 표정을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미안해진다. 더없이 부끄러워지고 죄스러워진다. 그래서 눈물이 나온다. 철없는 동생은 아직 철이 덜 들어 나잇값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큰형은 가장 노릇하느라 마음 걱정이 적지 않다.

학위수여식이라 하지 않고 졸업식이라고 하고 싶어진 건,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 나눌 때 학번을 묻지 않고 그냥 나이를 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15.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