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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꽃샘추위 찾아온 날

by 이우기, yiwoogi 2015. 2. 27.

모순이다.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이 하는 것이고 하늘이 하는 것이고 땅이 하는 것이고 바람이 하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꽃은 바람 없이 햇살 없이 땅심 없이 필 수 없다. 그렇게 엮여 있다. 사람 눈길만으로는 필 수 없다. 꽃을 꽃이라 하고 꽃마다 이름 지어 불러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꽃은 사람 이전에도 있었고 사람 이후에도 있을 뿐이다.

그것을 시샘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늘이 시샘하고 바람이 시샘하고 햇볕이 시샘하고 땅이 시샘한다. 꽁꽁 언 땅 녹여 꽃 피라 해 놓고 이제 와서 입술 삐죽이며 시샘하는 것이다. 포근한 바람 실어와 후후 입김 불어넣어 줘 놓고 이제 와서 콧방귀 뀌며 시샘하는 것이다. 따뜻한 햇살 내리쬐어 꽃 필 때 되었으니 잠에서 깨어나라 해 놓고 이제 와서 눈 흘기며 시샘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순이다. 어제는 꽃 피라 해 놓고 오늘은 시샘하니 모순이다. 어제는 봄이 왔다 소리 질러 놓고 오늘은 겨울이라고 소리친다. 어제는 두꺼운 옷 벗어던지라 해 놓고 오늘은 가죽장갑과 목도리 챙겨 나서라 한다.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하는 말 다르니 웃기지 않는가. 헷갈리지 않는가. 좀 놀랍지 않는가. 좀 화나지 않는가. 묘하다.

하늘이 하는 짓이 이러한데, 사람이 하는 짓 따위야 견줄 수도 없지 않겠나. 어제 한 말 오늘 뒤집고 어제 한 약속 오늘 어겨도 뭐라고 말하겠나.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입 안 혓바닥 놀리듯 제 맘대로 바꿔버려도 뭐라고 따지겠나. 얼굴로는 환하게 웃으며 꿍꿍이속은 험악한 욕을 해댄들 뭐라고 하겠나. 두 손 맞잡고 약속하고 다짐해놓고 돌아서서 무서운 칼 갈고 있다고 한들 어쩌겠나.

자연이 하는 짓이 저러한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다를 게 뭐 있으며 그 사람이 하는 정치라고 한들, 경제라고 한들 뭐가 다르겠나. 3초 뒤면 드러날 거짓말도 뻔뻔하게 해대는 세상이고 3분 뒤면 들통날 속임수를 버젓이 써대는 세상이고 3년도 못 가 드러날 후안무치한 짓도 고개 빳빳이 쳐들고 무지막지하게 해버리는 세상 아닌가.

꽃샘추위라고 한다. 꽃은 그저 꽃으로 필 때 되어 피어나는데, 그럴 때가 되었다는 하늘의 신호를 받았을 뿐인데 왜 시샘하나. 사람은 태어나서 그저 사람으로 살아갈 뿐인데 왜 정치를 만들고 경제를 만들고 제도를 만들어 편을 가르고 위아래를 나누고 좌우로 찢어 쌈박질을 하게 하는가. 모순 덩어리 세상이다.

사전에 보니 꽃샘추위는, 봄이 되면 겨울철 내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약화하면서 기온이 상승하다가, 갑자기 이 기단이 일시적으로 강화하면서 발생하는 이상 저온현상이다. 그러니 시베리아 기단이 물러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휙 돌아서서 메롱 혀를 내밀면서 우리를 놀려대는 현상이다. 우리 정치가, 선거 때만 다가오면 고개 숙이며 잘 하겠다, 더 주겠다 약속해 놓고 당선만 되면 뒤돌아서 메롱 하고 우릴 놀려대는 것과 뭐가 다른가.

좀 추운 아침이다. 바람이 얼었다. 콧물도 얼었다. 2015.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