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쎄시봉>을 봤다. 아내 덕이다. <OCN>에서 <수상한 그녀>로 연휴 마지막 오후를 보내다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나섰던 참이다. 개봉할 때부터 같이 보자고 약속했었는데 닷새 간의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일요일 오후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간단하게 평을 하자면, ‘쎄시봉을 추억하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고자 했다면 좀 늦게 나왔고, 60년대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태동과 발전상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자 했다면 좀 일찍 나왔다’이다. 그래도 좋은 노래를 많이 감상해서 좋았다. 조금 꼬여 있던 갈등도, 뻔히 보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대학 1학년 때였던가 2학년 때였던가. 어디론가 엠티를 갔다. 한잔씩들 하고 돌아가면서 장기자랑을 했다. 장기랄 게 뭐 있나. 대부분 노래를 불렀다. 나는 뭘 불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한 여학생이 <웨딩케익>을 불렀다. 잘 불렀다. 몇몇은 따라 불렀다. 민망하게도 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가사가 귀에 박혔다. 노래를 부르는 여학생이 비련의 주인공으로 보였다. 하고 많은 노래 가운데 이 노래를 선택한 것은 뭔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추측해 본 것이었다. 그 나이에 그럴 리야!
송창식 노래는 많이 듣고 불렀다. 조영남 노래도 많이 들었다. 나훈아와 남인수를 최고로 치는 아버지는 조영남은 별로라고 말했다. 따라 부르기엔 목소리도 음정도 박자도 죄다 젬병이었지만 무척 좋아했다. 내가 송창식을 부르고 윤형주를 듣던 때는 ‘쎄시봉’으로부터 20년은 지난 즈음이었다.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나 <사랑이야>, 이장희의 <그건 너>는 노래방 애창곡이 되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조영남의 <딜라일라>를 열창하는 후배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내내 노래에 푹 빠졌다. 트윈폴리오 인기곡 모음이 있을는지 찾아봐야겠다. 최고조 부분에 가서는 눈물도 좀 났다. 나의 청춘은 어디 있을까, 내 청춘 시절에 부르던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시절도 이렇게 감성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데 감정이 이른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혼자 집에 있던 아들이 전화를 한다. 같이 저녁을 먹자 하니 혼자 라면을 먹겠다고 하다 기어이 불려나왔다. 세 식구 나란히 <마천돼지국밥>으로 간다. 한두 번 가본 곳이다. 아내는 특히 김치가 맛있더라고 기억해 냈다. 아내는 김치 맛이 변했다고 했지만, 돼지국밥을 안주 삼아 <좋은데이>를 마시니 참 기쁘고 행복했다. 설 연휴를 잘 보내서도 아니다. 영화 덕분도 아니다. 돼지국밥 덕분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세 가족이 마주앉아 맛난 음식을 먹으며 웃을 수 있다는, 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고맙고 고맙다.
평범한 일상은 세월이 흐른 뒤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 조금은 힘든 시기였지만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가족의 사랑에 있었다는 것으로 기억될까. 뜨끈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 말아먹으며 많은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가족의 정이 무한정 흘렀던 날로 기억될까.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마주앉아 밥을 같이 먹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웃음이 되고 그것이 곧 기쁨이고 행복이던 시절로 기억하게 될까.
영화 <쎄시봉>에서 사랑은 아픔이 되고 아픔은 추억이 되었다가 다시 추억은 사랑이 되었다. 그들이 함께 부른 노래로 추억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같이 영화 한 편 본 것으로 기억을 추억하게 될지. 집에 와서 CBS라디오를 켜니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렇게 설 연휴도 지나가고 일요일도 다 갔다. 흐뭇하다.
2015.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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