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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사흘 동안의 투병기, “이제 끝내자”

by 이우기, yiwoogi 2015. 2. 11.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 보다 잠들었다. 10시도 안 되어 잤다는 말이다. 월요일 새벽 내도록 몸은 추웠고 기침은 터졌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니 조금 어지러웠다. 이게 몸살의 전조이구나 싶었다. 토요일, 일요일 바깥이 추워서 거의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본가에 다녀온 것밖에 없는데... 어쨌든 하루만 버텨보자며 이 앙다물고 출근했다. 일을 하는데 머릿속이 뱅뱅 돌았다. 목울대가 따갑고 말이 헛나왔다. 오후엔 더 심해졌다. 뼈마디가 분해되는 것 같고 근육은 급속도로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으슬으슬 추운데 얼굴은 발그레해졌다. 몸의 열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기침을 하면 온몸에 전기가 찌르르 통했다. 다섯 시면 퇴근하는데 결국 네 시에 조퇴했다.

 

자주 가는 내과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목구멍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삼 일치 약 처방을 받고 수액을 맞았다. 좁은 병실에 환자가 서넛 있었다. 링거액은 노랬다. 대략 1시간 30분은 걸린 것 같다. 사십구 년 정도 살고 보니 곳곳에 고장도 잦고 그만큼 삶이 고달파지는구나, 다음엔 또 치과이겠지, 정말 이러저러하다가 못 일어나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은 어찌 되나 하는 걱정들을 이어가다 보니 잠이 들었다. 생각을 이어가지 말아야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큰뇌의 계략임에 틀림없다. 하루 종일 따뜻한 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오줌이 마려워 중간에 깨기도 했다.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햄버거를 샀다. 병원을 다녀왔지만 아픈 내색은 하기 싫었다. 수액 맞은 뒤 놀랍도록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껴서이기도 하다. 셋이서 햄버거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먹고 콜라로 입을 축였다. 약을 먹고 잤다. 링거를 맞고 약을 먹었으니 괜찮겠거니 했다. 하지만 꿈자리는 사나웠다. 화요일 내도록 힘들었다. 통화하다가 수화기를 가리고 기침을 했고, 손님이 오면 입을 가리고 밭은기침을 했다. 저녁에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 조용한 극장에서 가장 큰소리로 가장 자주 기침을 한 장본인이 되었다. 끼니는 햄버거와 콜라로 때웠다. 아홉 시 반쯤 귀가했다. 몸살 기운은 완전 가셨는데 목기침은 그칠 줄 몰랐다. 목안이 따갑고 가렵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약을 먹고 컴퓨터를 켠 뒤 노닥거리다가 열한 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전기장판 온도를 보통 때보다 많이 높였다. 기침이 나고 오줌이 마려워 잠을 깼다. 아침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새벽 한 시였다. 그때부터 수요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리고 아침을 지나 점심을 지나 오후가 되도록 기침은 정도를 더해갔다. 오후 네 시 반에 행사가 있어서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못 찍겠노라 말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어찌어찌 마치고 다섯 시 넘어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목구멍을 들여다보더니 아이고, 심하네.” 한마디 하고는 어떤 약을 처방할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내 목구멍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백 일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할아버지 손등 같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한번에 낫게 쎄고 독한 것으로 처방해 달라.”고 주문했다. 의사는 웃었다. ‘별놈도 다 있구나.’하는 것인지 그 고통을 알겠다.’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알약 개수가 하나 늘었고 시럽도 하나 붙었다. 삼 일치 약인데 삼 일째 되는 날 마지막까지 약을 다 먹어야 한다면 나는 죽을지 모른다. 최소한 세 개로, 아니면 다섯 개 안에서 기침은 멈춰주어야 한다.

 

그래야 밥맛이 돌아오고 술맛도 돌아올 게 아닌가. 그래야 곧 태어날 누구누구 아기 보러 가기도 하고 거기 모인 친구들과 번개 모임도 할 게 아닌가. 그래야 월요일로 예정된 동문회 가서 객쩍은 소리 신나게 떠들며 스트레스 풀 게 아닌가. , 무엇보다, 그래야 병실에 드러누워 정말 이러저러하다가 못 일어나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은 어찌 되나.’ 하는 무서운 걱정을 다시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어쨌든 손가락은 안 아프니 이렇게 넋두리라도 여기 늘어놓을 수 있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2015.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