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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아련한 기억속 작은설날

by 이우기, yiwoogi 2015. 2. 17.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런 노래는 몰랐다. 어른들이 먼저 몰랐고 라디오에서도 못 들었고 텔레비전은 없던 시절이다. 설날은 알았다. 날이 조금 따뜻해졌고 어른들의 표정에 봄이 온 듯했다. 괜스레 설레고 두근거리기도 했다. 설날이 다가오면 집안 청소를 했다. 하루만 지나면 또 지저분해질지라도 마당부터 쓸었다. 외양간과 닭장에 새 짚을 깔고 장독대 뚜껑을 닦았다.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는 반가웠지만 청소하는 건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새 옷도 사주고 새 신발도 사주었다. 아들만 넷인 우리 집엔, 지금 생각해보니, 만만찮은 비용이 들었을 것 같다. 검정고무신에 트레이닝복 바지 하나면 만세를 부르던 시절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이만저만 머리 아픈 일이 아니었을 듯하다. 돈 살 대추가 있나 밤이 있나. 형님 옷을 물려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때였는데 명절엔 꼭 옷을 하나씩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마당가에 낮은 의자를 놓고 입에 담배를 문 채 순서대로 우리를 불렀다. 머리 깎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군대서 이발 기술을 배운 아버지 덕분에 동네 이발소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번거로움을 덜었다. 머리숱이 유난히 많았던 작은형을 깎을 때 아버지는 바리깡이 안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밤이 되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물을 끓였다. 네 아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불러 때를 박박 밀었다. 유난히 춥다 싶은 설에는 가마솥 주변을 비닐로 둘러쳐 바람을 막았다. 그래도 추워 온 몸에 오돌토돌 돌기가 돋았다. 가마솥 바닥은 뜨거워 팔짝팔짝 뛰게 만들었다. 허연 입김으로 어머니를 놀리기도 했다. 셋째인 나는, 중간 중간 물을 갈아 넣었는데도 때가 둥둥 뜨는 물에 몸을 담갔다. 한 명당 10분이었을까 30분이었을까. 어머니에겐 중노동이었지만 우리는 장난이었다. 형제끼리 발가벗고 목욕하던 추억은 아련하기만 하다.

어른들은 생선은 미리 사서 말려 놓고 쌀, 옥수수를 튀겨 강밥도 만들었다. 그런 기술은 어디에서 배웠던 것일까. 가래떡은 꼬들꼬들 말려 열심히 썰었다. 나는 한석봉 어머니처럼 칼질을 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형제들 가운데 나는 꼭 가래떡 썰기에 나섰다. 어른들은 말리지 않았다. 떡 모양이 타원형으로 잘 썰려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떡이 또르르 굴러가면 그건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칼 잡은 손의 팔목과 떡 잡은 손의 아귀가 아파오고 허리도 아프고 장딴지에 쥐가 내릴 즈음에야 떡 썰기는 끝나곤 했다. 나중에 떡국 먹을 땐 내가 썬 동그란 떡이 그릇 밑바닥에 보이곤 했다.

세뱃돈은 10원씩, 운 좋은 때는 50원도 받았다. 할머니는 배꼽 밑에 감춰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내어줄 때도 있었다. 또래끼리 모여 동전 따먹기를 했다. 마당 한가운데 마주보게 금을 그어 놓고 대봉알이란 돈 따먹기를 했다. 그때도 느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건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형이 유리한 경기였다. 그래도 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운동이라도 되었지, 진주로 이사 오니 숫제 삼삼오오 쭈그리고 둘러앉아 삼치기 짤짤이를 하는 게 아닌가. 동네 어른 댁으로 세배도 다녔다. 지난해 콜록거리던 할배가 올해는 안 계셨다. 하루가 짧았다.

정월대보름까지 연날리기를 했다. 연줄에 사금파리를 먹여 연싸움을 했다. 정월대보름날 달집 짓기에는 동네의 자존심이 걸렸다. 아랫동네, 윗동네 형들은 서로 크고 멋지게 달집을 짓느라 소나무를 베었고 대나무를 쪘다. 타작을 마친 논 가운데 있는 볏단을 날랐고 부지런히 새끼를 꼬았다. 하루 전날 밤에는 서로 딴 동네 달집을 망가뜨리려 첩자를 보내었고, 서로 그런 줄 빤히 아는 이치인지라 보초를 세우곤 했다. 달집 태우는 날 쥐불놀이를 하며 밤 깊어가는 줄 모르다가 코피를 흘린 일도 있다. 허여멀건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던 그 보름달은 지금 노랗게 또는 빨갛게 물들어 도시의 하늘을 비추고 있다. 달도 지치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았는데 그땐 어찌나 신났던지. 설날만 다가오면 괜스레 설레고 들뜨곤 했다. 흰쌀밥에 돼지고기 한 점이 그리 맛있고 지금은 흔하디흔한 곶감 한 조각이 어찌나 맛있던지. 떡국그릇 바닥에 가라앉은 닭고기 한 점은 또 어떻고.

작은설날 하루 종일 본가에서 돼지고기 삶고 썰고 생선 찌고 파전 안주 삼아 막걸리 마시고 수육 먹으며 소주 마시고 돼지 삶은 물에 시래기 넣어 끓인 국에 밥 말아먹고 이것저것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옛 생각이 간절하다. 일고여덟 살 무렵이나 열한두 살 먹던 때가 그립다. 그래도 내일은 설이라 하니 가만가만 삶을 돌아보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그럴 나이도 되었으니.

담배 냄새 뿜으며 머리 깎아주던 아버지 안 계시니 더욱 쓸쓸하기만 한 설날, 아버지에게 큰절 두 번올리는 설날이 다가오니 모든 게 새삼스럽다. 모든 게 꿈같기만 하다. 2013. 2. 9. 작은설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