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학 다니면서 교직과정을 이수하긴 했지만 솔직히 교육을 모른다. 교육학개론, 교육심리, 교육방법론, 전공교육론 따위 과목을 들었고 대부분 B 이상을 받았는데 D를 받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교육계에서는, 국내에서는 방정환 선생님, 외국에서는 페스탈로치나 루소가 큰형님으로 대접받는 것 정도는 안다. 많은 교육이론은 서양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하여 얻은 결과를 인간에게 대입하는 것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교육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른다. 그걸 알면 선생님 노릇 하고 있게?
교육의 결과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안다. 어른 세대가 뒷세대에게 교육을 정말 제대로 잘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대충 안다.
먼저, 웃어른을 존경할 줄 알게 된다. 그보다 먼저 웃어른이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 나이 많다고 다 어른 대접받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미리미리 준비하고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저지른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작정하고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용서받기 힘든 줄 안다. 나라를 배반하고 겨레의 등에 칼을 꽂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어른 자격이 없으니까. 웃어른으로 존경받지 못할 사람이 나라의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 줄도 안다.
다음, 동료를 사랑할 줄 안다. 동료란 친구의 다른 이름이겠지. 친구와의 우정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지켜나가며 그것을 배신해서는 안 되는 것인 줄도 알게 된다. 어깨 겯고 소풍가던 추억과 마주앉아 도시락 까먹던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곧 친구라는 것도 안다. 돼지갈비 반찬이나 단무지 반찬이나 섞어먹어야 제맛이라는 걸 알게 모르게 몸에 담게 된다. 부자라고 뒤돌아 앉아 혼자 맛있는 반찬 먹고, 부자 아니라고 또 뒤돌아 앉아 혼자 맛없는 반찬 먹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안다. 적어도 어릴 때만이라도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교실에 앉아 같은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똑같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양심으로 알게 된다. 축구를 하는데, 부자라고 나이키 축구공 차고 가난하다고 돼지불알 찰 수는 없지 않은가. 교육은 그런 것이지 않나 싶다.
다음, 후배를 사랑할 줄 안다. 나보다 어리고 못났다고 업신여기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만일 후배를 괴롭히면 그 후배는 그의 후배를 또 괴롭히게 되어 괴롭힘은 끝없이 대물림될 것임을 알게 된다. 당장 마음에 안 들어도 그의 장점은 무엇인지 그의 고민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끝까지 들어줄 줄 알게 된다. 그러기 전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런 후배였음을 잊지 않는다. 후배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중에 생각해 보면 다음 세대를 믿는다는 것이고 그 믿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하는 힘은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게 될 것이다.
다음, 좀더 나이가 들면 우리나라가 제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지 생각하는 힘을 갖게 된다. 혼자 좋은 직장 다니고 혼자 돈 많이 벌어 제 가족끼리 좋은 곳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살고 그들은 무엇 때문에 힘겨워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줄 알게 된다. 힘든 사람을 내버려 두는 정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제도적으로 뭔가 바꿔야만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제도를 바꾸는 사람은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또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을 뽑는 일이 정말 중요한 것임을 당연히 알게 된다. 부정한 방법으로 여론을 조작하여 선출직에 뽑힌 사람이라면, 그가 조합장이든 의원이든 시장군수든 대통령이든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상식도 교육에서 배운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으면 끄집어 내려야만 한다는 것도 교육에서 배운다. 그런 사회의식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건 교육의 힘 가운데 하나다.
다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우리 겨레가 먼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 하고 지금 조금이라도 잘해야 다음 세대에 뭔가 좋은 것을 물려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100년 안팎으로만 본다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주구(走狗)가 된 사람이 해방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는 뼈저린 반성을 하게 되고, 더군다나 일본 국왕 앞에 피의 맹세를 한 자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정말 안 되었던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훌륭한 선생님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책상을 쾅 내리치거나 강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켤지도 모를 일이다. 10년 안팎으로 본다면, 아, 보지 말자. 교육을 잘 받았지만 간이 작거나 소심한 사람이라면 10년 안팎 시기의 일을 잘못 언급했다간 된통 당한다는 것을 아니까. 그게 무서우니까. 교육의 부질없음이여!
다음,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되었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온갖 호들갑을 떨고는 있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과연 미개에서 벗어났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되묻고 깊이 반성하게 될 것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맨 앞을 달리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건 ‘천민자본주의로구나’ 하는 것을 한눈에 꿰뚫어보게 될 것이다. 또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네 어쩌네 자랑이지만 이면을 슬쩍 들춰보면 구린내가 하도 진동하여 졸도할지도 모를 것이다. 속내를 들여다보고 이면을 들춰보는 지혜와 용기는 곧 교육에서 나올 게 아닌가. 생득적(生得的)인 게 아니니까.
다음, 조금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을 때 최소한 “인문학보다 취업이 우선이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밥 먹고 사는 게 우선이라면 이 나라에 교육이 왜 필요하며 하물며 비싼 돈 들어가는 대학이 왜 필요하겠는가. 밥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려면 노동부 장관을 하든지 아니면 취업지원센터 말단 사원이 되어야지 국민 교육을 책임진 막중한 자리에 올라앉을 게 뭔가.
먹고 사는 게 유사 이래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누가 모르는가. 그래서 초등학교 나온 사람도 먹고 살 길이 있고, 중학교 나온 사람도 먹고 살 길이 있고, 고등학교 다니다 만 사람도 제 스스로 먹고 살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고, 대학, 그래 인문대학 나온 사람도 그것이 곧 밥벌이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정도의 안목과 식견과 양심이 없는 사람을 어찌 교육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사람이 어찌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앉아 똥이요 된장이요 할 수 있겠는가. 교육이란 말이 부끄럽다.
다음, 이제 모르겠다. 훌륭한 선생님에게서 제대로 교육받은 이라면 지금 지껄이는 소리마저 교육의 은혜와는 거리가 먼 개소리괴소리임을 0.1초 만에 간파하였을 터. 따뜻한 밥 먹고 식은 소리 내뱉는 얼간이일랑 저 멀리 시구문 근처로 집어던져 버리고, 입은 분명 바르게 생겼는데도 말이 휘뚜루마뚜루 제멋대로 쏟아져 나오는 헛똑똑이일랑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봉해버려야 한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교육의 힘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영혼 없는 얼간망둥이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닌가. 교육받은 이 나서서 말 좀 해주오. 2015.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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