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나 나라에서 무슨 엑스포, 박람회 같은 국제 행사를 여는 데 대해 반대하는 편이다. 가령 고성세계공룡엑스포,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순천국제정원박람회, 여수세계박람회, 합천대장경세계문화축전 같은 대규모 국제 행사 말이다. 또는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 경기대회도 그다지 반기지 않는 편이다. ‘편이다’라고 말하는 건, 어쩌다 보면 필요한 게 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가지는 긍정적 측면을 깡그리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반대한다고 하여 그 의견을 열심히 주장하거나 직접 반대운동을 펼칠 수 있을 만큼 이론 무장이 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2월 13일 <한겨레> 1쪽에 나온 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평창을 향한 나가노의 경고’라는 이 기사는 일본 시민단체인 ‘올림픽이 필요 없는 사람들 네트워크’ 대표 에자와 마사오 씨의 인터뷰 기사이다. 요지는 “올림픽 빚 때문에 복지축소, 공공요금 인상, 환경훼손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22조 경제효과? 나가노 올림픽 17년, 17조 빚만 남았다.”고 지적한다.
2월 9일 여러 언론에 국제자동차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의 코리아 그랑프리 조직위원회 해산 소식이 보도되었다. 조직위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F1 대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조직위 존립 근거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조직위를 해산하려면 F1 그랑프리의 상업적 권리를 보유한 포뮬러 원 매니지먼트(FOM)와 대회를 개최하지 않은 데 따른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FOM은 대회를 개최하지 않은 2년 치 위약금에 해당하는 9000만 달러(약 988억 원)를 전라남도에 요구할 수 있다. 2006년 대회 유치를 확정했고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동안 해마다 열기로 했는데 실제로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번 대회를 열었고 4년 동안 운영적자가 1902억 원에 이른다.
대규모 국제행사를 유치할 때 찬반양론이 뜨겁다. 대개 유치하려는 쪽은 이런 대회를 통하여 자기 얼굴을 알리려는 쪽이다. 행사장이나 관련 시설을 짓는 업체에서도 찬성하겠지. 먹고 살 만큼 버는 사람들은 멋진 구경거리를 우리나라에서 보게 되니 당연히 좋아라 하겠지. 반대하는 사람에 대응하기 위하여 학자를 동원하여 경제효과를 발표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론과 계산법을 동원하여 들이는 돈보다 나중에 거둬들이는 돈이 수십 배, 수백 배 많다고 발표한다. 무엇보다 이런 국제행사를 엶으로써 우리나라가 선진국임을 세계만방에 자랑하며 국가적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고 한다. 다른 여러 나라와 경쟁하여 유치권을 따냈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반대하려는 쪽은 그런 국제행사를 하려면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데 행사를 마치고 나면 그 건물은 쓸모없이 방치된다고 주장한다. 행사장 주변의 농경지를 파묻거나 산을 깎거나 바다를 메워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환경을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한 번 파괴된 자연환경은 행사를 마친 뒤 복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경제효과, 홍보효과라는 건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찬성하는 자의 입장에 유리하게 부풀려졌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부풀려진 것을 증명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대개 국제행사는 3~4년에 한 번씩 여는데 행사를 하지 않는 기간에 모든 시설들은 유령도시처럼 방치되지만 그것을 유지, 관리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월드컵 경기장들은 어떻게 유지, 활용되고 있는가. ‘제주월드컵경기장이 매년 수억 원의 적자 운영을 이어오는 가운데 서귀포시가 경영수익 확대방안 모색에 나선다.’는 보도가 나왔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은 체육기금 285억 원, 제주도 345억 5000만 원, 서귀포시 494억 5000만 원 등 모두 1125억 원을 투입해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4억 2000만 원의 적자를 봤다. 다른 월드컵 경기장들도 비슷할 것이다. 월드컵 경기장 10곳 중 5곳이 적자라는 보도가 있었다.
큰 국제행사를 열 때 가만히 보면 가관인 게 있다. 입장권을 팔아야 돈을 벌 텐데 그게 잘 안 팔리는 모양이다. 행사를 주관하는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소속 공무원들에게 강제로 표를 할당하여 팔기도 한다. 전국의 다른 공무원들에게도 공문을 보내 제발 표를 사달라고 하소연한다. 후원기관인 금융기관이나 기업체 임직원들에게 공짜표를 안긴다. 그래도 안 되니까 푯값을 깎아서 마구 뿌려댄다. 그래놓고는 행사 개최 며칠 전에 벌써 표가 몇 퍼센트 팔렸느니 하며 자랑질이다. 국제행사가 정말 볼거리로 가득하다면 국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표를 살 게 아닌가. 훌륭한 행사에는 외국인들도 우르르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결국 행사는 적자로 끝난다. 시설들은 흉물로 남는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슬프고 화난다.
이런 일에 쓸 돈이 있으면 교육에 좀 쓰라고 말하고 싶다. 초중고등학교 시설 좀 좋게 바꿔주고 교실 안에는 좀더 뛰어난 기자재를 활용하여 수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학생들 밥값 지원도 크게 늘려 주었으면(하긴 그것마저 안 주겠다는 지자체도 있지만) 한다. 대학생 등록금 문제도 나라에만 맡기지 말고 지자체가 좀 지원해 주면 어떨까. 가난하거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듬뿍 주면 좋겠지. 학교 체육에도 돈 좀 쓰자. 체육 꿈나무들이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마음껏 운동장을 뛸 수 있게 해줄 수는 없나. 학교에서 과학교육이 제대로 되게 하자. 책 속의 이론교육이 아니라 실제 실험실습을 해볼 수 있도록 인력과 시설을 갖춰보면 안 될까. 참, 선생님 월급도 더 주고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를 정규 교사로 임용하여 사명감을 높여주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교육에 돈을 쓰는 것은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
그나저나 평창 동계 올림픽이 걱정이다. 강원도가 걱정된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라 되돌릴 수 없게 됐다. 지금이라도 올림픽을 하지 말자고 하면 또라이로 취급받겠지. ‘평창의 경우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이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1100억 원을 들여 500년 된 원시림을 베어내고 경기장을 만들어 3일 경기를 한 뒤 다시 1000억 원을 들여 복원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무모하기 짝이 없다’(<경향신문> 사설)는 사실에 제발 좀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평창 동계 올림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어렵게 유치에 성공했는데 그사이에 들어간 돈은 얼마이며, 또 많은 돈이 올림픽조직위원회 로비에 쓰였다는데 그건 나중에라도 문제되지 않을까. 하여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201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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