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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장대동 추억(1)-불법 복제 테이프 장수

by 이우기, yiwoogi 2015. 2. 10.

진주시 장대동 길 아랫집에서 몇 해를 살았다. 비봉산 의곡사 근처에서 흘러내린 물은 봉래국민학교 앞을 지나 옥봉성당을 끼고 돌아 동방호텔 앞 배수구에서 남강에 합류하는데, 가깝지 않은 거리를 흘러가는 도랑에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수돗물이 죄다 섞이게 마련이어서 빛깔은 허여멀갰고 냄새는 시궁창 자체였다. 지금은 복개되어 징그러운 구정물을 보지 않아도 되고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폭과 깊이가 오 미터 남짓 됨 직한 도랑 옆에 버스 한 대 지나다닐 만한 흙길이 있었다. 흙길에서 우리는 구슬치기를 했고 구슬은 하루에 너덧 번씩 도랑으로 떨어졌다. 한쪽에 걸쳐 놓은 쇠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구슬을 주워오는데 그러자면 그 구정물에 손을 담글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서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가위 바위 보를 하곤 했다. 구슬을 주워오고 나면 에이, 퉤퉤!” 하며 손가락에 침을 뱉어 바짓가랑이에 슥 문질렀다. 우리는 도랑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 몇 해, 다시 이쪽에서 몇 해를 살았다.

그 길에 우리 집이 붙어 있었다. 붙어 있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대문을 열면 1층 높이의 계단이 아래로 전개되었다. 그래서 길 아랫집이다. 길에서 보면 2층인데 마당에서 보면 3층 건물이다. 우리가 전세 사는 본채는 그냥 1층이고, 붙어 선 3층짜리 건물엔 다른 사람이 층마다 따로 세 들어 살았다. 2층은 길에서 바로 드나들고, 1층과 3층은 대문을 통과해야 드나들 수 있었다. 집 주인은 어디 사는지 몰랐다. 화장실은 푸세식 하나였다. 거기서 대략 중학교 1학년 말부터 대학교 입학하던 때까지 살았다. 마당에 햇살이 드는 건 정오 무렵 잠시잠깐 뿐이었다. 빨래는 화장실 위 좁다란 옥상에 널었다.

3층에 세 든 사람은 서른 살쯤 된 총각 아저씨였다. 이름은 오랫동안 기억했었는데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은 뚜렷이 기억난다. 생김새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지만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대문니 하나가 깨졌는데 기분 좋을 땐 매력으로 보였고 어떤 때는 험악한 싸움의 흔적 같게도 보였다. 그는 불법 복제 노래 테이프 장수였다. 카세트테이프 수백 개를 수레에 가득 싣고 중앙시장 입구 국민은행 근처에 자리를 틀었다. 얌전하고 착한 나를 눈여겨봤는지 한 번씩 시장으로 데려갔다. 오줌 마렵다며 자리를 비우면 그의 노래 테이프 수레를 우두커니 지켜 서 있기도 했다. 누가 값을 물으면 대충 가르쳐 주었고 사겠다 하면 팔았다.

그때 주로 튼 노래가 김연자, 박일남의 트로트 메들리였다. 두만강, 낙동강, 백마강을 죄다 건너던 시절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아버지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가 재탕, 삼탕 끝도 없이 들려오는 것이었는데, 그런 재미 덕분에 그 총각 아저씨를 좀 따랐던 것 같다. 한 번은 근처를 지나가던 진주중학교 사회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담임이 아니니 못 알아보겠지 싶어 외면해 버렸다. 선생님은 잠시 동안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 우리 학교 학생인데, 저기 서서 뭐 하는 거지?’ 이러지 않았을까.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끝까지 왼고개를 틀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아무 일 없었다.

불법 복제 테이프는 부산에서 떼 왔다. 겁도 없이 부산까지 따라간 적이 있다. 그는 나를 장돌뱅이로 만들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가수로 만들 생각이었을까. 만든다고 만들어질 만했을까. 직행 버스를 타고 간 부산이라는 도시는, 어린 나이에 생각해도, 건조하고 아득했다. 숨이 막혔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나서도 한참을 걸어가서야 우리는 노래 테이프 불법 복제 업체에 다다랐다. 형님 동생으로 너나들이를 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오랜 동료 같았다. 업체 사람은 요샌 하도 단속을 많이 해서 영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불법테이프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런데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마음속에 불법을 향한 아슬아슬한 스릴이란 건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은 뒤 커다란 박스 2개를 하나씩 나눠 들고 간 길을 되밟아 올 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안 그러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생각했다. 어깨가 내려앉을 정도로 무거운 불법을 둘러메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인생을 걸어갈 수는 없지 않겠나 싶었던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던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까.

어느 일요일 아침 3층에서 고함소리가 터졌다. 고함 속에는 여자 사람 소리도 섞였다. 울음인지 신음인지, 볼썽사나운 풍경이 상상되었다. 어머니는 징그런 년놈들!”이라고 진절머리를 쳤고,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만한 나이의 남녀가 싸우는 모습을 보거나 질펀하게 터져 나오는 육두문자를 생음악으로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우리는 잘 몰랐는데, 3층에는 여자 사람이 가끔 밤이슬을 맞으며 드나들곤 했다. 새벽에 누가 대문을 두드려 나가보면 귀신같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며 서 있곤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마당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3층까지 비틀거리며 올라갈 땐 철제 계단에서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고도 했다. 수틀리면 잡아먹을 듯이 싸우고, 그러다가 또 시시덕거리며 하루 종일 논다는 것이다. 그런 나이였을 테니까.

불법 복제 테이프 장수 총각 아저씨가 언제 딴 데로 이사 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3층이 조용했다. 불법 노래 테이프들을 바리바리 싣고 떠나가는 장면을 못 본 게 좀 아쉬웠다. 1년 남짓밖에 안 되는 인연이었지만 정이 제법 쌓였었는데. 누가 새로 이사 들어온 것 같지도 않았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3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총각 아저씨가 골백번도 더 오르내렸을 철제 계단은 칠이 벗겨져 심하게 녹슬어 있었고 조금씩 흔들렸다. 그는 흔들리는 철제 계단에서 자기 인생을 본 것이었을까.

방문을 열었다. 찢어진 벽지,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홑이불, 노래 테이프 케이스들, 빗자루, 쓰레받기, 재떨이, 빨지 않은 것 같은 양말 한 짝, 바닥에 뒹구는 한 장짜리 달력, 대충 둘둘 말아 놓은 휴지, 그리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 이런 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기 삶의 흔적을 그렇게 남기고 또 다른 불법과 애정이 넘치는 세상으로 떠나간 것일까. 삼청교육대라도 입학한 것이었을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은 아주 나중에 문득 든 것이다.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