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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높은 문화의 힘

by 이우기, yiwoogi 2015. 1. 31.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나의 소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도진순 주해 백범일지431)

호주에서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축구 경기대회결승전을 보면서 뜬금없이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이 생각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운동 경기에서 자기편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 대항전에서는 더욱 그렇다. 축구는 다른 경기에 비해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더 큰 것 같다. 그래서 매우 열광적이다. 결승에서 우리나라와 주최국 호주는 연장까지 가는 힘겨운 경기를 치렀다. 힘이 고갈되어 장딴지에 쥐가 나 쓰러지는 선수를 보면서도 조금만 더 열심히 뛰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1-2로 졌다. 열심히 응원했는데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도 잘했다.”는 말이 많다.

그러나 나는 호주의 경기 내용을 보고서 적잖이 실망했다. 거친 경기를 하다 보면 반칙을 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하여 노란 딱지를 받기도 한다. 호주는 모두 6장의 노란 딱지를 받았다. 그건 경기를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저질러진 반칙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심판의 눈은 피했지만 딱지 받을 짓을 한 선수는 더 있었다. 축구역사에는 우승국만 기록으로 남겠지만 인류의 가슴과 축구팬들의 마음에는 지저분한 경기를 한 나라들의 더러운 경기내용도 남는다. 2002년 월드컵 때, 그 이후로도 자주 이탈리아 선수들이 그러했다. 그런 나라들은 경기 결과에서는 이겼다고 큰소리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류의 가슴에 페어플레이를 모르는 야만인으로 기억될지 누가 알겠는가.

여기서 나는 백범 선생이 말한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게 문학, 음악, 미술, 무용, 건축 같은 문화예술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운동 경기에서도 문화는 있어야 한다. 경기 규칙을 지키고 불가피하게 반칙을 저지르게 됐으면 즉시 사과하고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 말이다. 신사적인 경기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기장 밖에서 상대 나라를 비하하거나 선수들을 비난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관중들도 높은 수준의 관람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건 스포츠에서 보여줄 수 있는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할 것이다. “스포츠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격렬하게 반대한다.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이기지 않는 것은 지느니만 못한 것이다. 이런 의식을 많은 사람이 가졌으면 좋겠다. “스포츠는 아름다운 문화 교류의 한 형태이다.”고 말하고 싶다.

생각을 조금 넓혀 본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권을 잡으려면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한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회의원을 많이 당선시켜야 한다.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북한더러 총질을 해달라고 장난쳐서도 안 되고, 승용차 짐칸 가득 불법 정치자금을 싣고 오게 하여 그걸 꿀꺽해서도 안 된다. 선거법에 명시되어 있는 규칙을 모든 후보와 정당이 공정하게 지키고 공명정대하게 경쟁하여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 힘 있는 국가기관을 동원하여(혹은 스스로 알아서) 온갖 인터넷 게시판에 상대 정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올림으로써 여론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못된 짓을 발판 삼아 당선되는 것은 높은 정치문화가 아니다. 저질이고 사악한 것이다. 축구경기라면 빨간 딱지를 받고 경기장 밖으로 쫓겨날 일 아닌가. 그렇게 하여 대통령을 당선시키면 5년 동안 정권을 잡을지는 모르지만 역사는 그들을 무엇으로 기록할 것인가, 묻지 않아도 알겠고 보지 않아도 뻔하다.

높은 문화의 힘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야 한다. 직장이라고 하는 작은 조직에서도 그렇고 시민사회 단체에서도 그렇다. 특히 경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몇몇 기업이 이익을 나눠 갖기 위해 짬짜미를 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소비자를 봉으로 보고 갑질을 하면 안 된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갑과 을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일는지 모르지만, 그건 대기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중소기업을 위해서도 옳지 않은 일이다. 역시 빨간 딱지 감이다. 국민의식 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대기업이 갑질을 잘못하다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일도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경제 영역에서도 문화의 수준은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안컵 축구 결승전에서 호주 선수들은 열심히 잘 뛰고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더럽게 경기를 하는 나라로구나.” 하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 하나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경기를 하다 보면 이탈리아 축구 선수들이 듣는 평가를 호주 선수들도 받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도 호주 선수가 페어플레이상을 받고 팀은 1984년 제정한 엡손 페어플레이상까지 받았다 하니, 씁쓸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보다2015.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