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1941년 8월 1일생(음력)이다. 뱀띠다. 5살 때 나라가 해방됐고 10살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 해방은 잘 모를 테지만 전쟁은 기억하지 않을까. 독일로 간 친구도 없고 아버지는 베트남에 간 적이 없다. 그런 일은 일제시대나 한국전쟁보다 더 먼 남의 이야기였다. 친척들이 거의 진주 인근에 살아서인지 이산가족도 없다. 1983년 KBS에서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할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주말이나 시험기간엔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 보면서 많이 운 기억이 있다. KBS <아침마당> 같은 데서 이산가족 찾는 사연이 나오면 혼자 훌쩍이는 걸 여러 번 봤다.
1월 18일 저녁 어머니와 아내와 함께 영화 <국제시장>을 보러 갔다. 우리에겐 부모세대의 일이고, 어머니에겐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닌가. 어머니는 평생 세상 일 잘 모르고 나라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이 살아왔지만 영화를 보면 그 시절 재미있거나 안타까운 사연 한두 가지쯤은 기억해 내고 공감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도 부모세대가 이겨낸 어려움과 아픔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어머니는 처음 영화 보러 가자고 아내가 전화했을 때 “요새 노인들도 보는 영화가 있다 하데...”라고 말했다. 아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실록영화가 어머니 또래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나 보다. 그건 아버지 생각이 너무 많이 나게 할 것 같아 일부러 피했다. 다음에 기회를 봐서 보여드리기로 하고.
어머니는 1960~70년대 미천면 안간 장터 마당에 천막 쳐 놓고 보여주던 <동백아가씨>나, 어쩌다 명절 때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던 영화를 더러 보긴 했을 테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난생 처음이다. 흔히 영화 보러 가는 걸 어른들은 “극장 구경 간다”고들 하던데, 실제 어머니는 ‘극장 구경’을 간 것과 진배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 시간에 모여 있다는 것도 신기해했고, “영화를 보여주고 같은 걸 또 보여주고 하나?”라고 물을 정도로 잘 모르는 세계이다. 키가 작고 몸집도 작으니 의자가 불편한가 보다. 신발을 벗고 올라앉았다가 잠바를 벗어 둘둘 말아 등 뒤에 받혔다가 몸 가누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덥지도 않은데 찬바람이 나오자 다시 잠바를 입는다.
조금 있으니 조용히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금요일부터 2박 3일간 큰집 가족들과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두 밤 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영화 내용도 진지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신파조 코미디에 가까웠는데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잘 이해되지 않았던가 보다. 별로 웃지도 않는다. 어머니 또래나 그보다 조금 젊은 축에 드는 분도 극장에 많았고, 그들은 울고 웃으며 영화 내용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머니에겐 그것마저 좀 힘들었던가 보다. 졸다가 깨다가를 되풀이하더니 나중에 이산가족찾기 할 즈음에야 온전한 정신이 돌아와, 두 손을 눈 가로 자주 가져간다. “옛날에 테레비에서 하던 기네.”라며 비로소 느낌의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는 거의 끝나간다.
나도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 없다. 흥남부두 철수 장면은 공지영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와 겹쳐져 처음부터 마음을 심하게 흔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보았던 이산가족찾기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슬픔과 아픔이 복받쳐 올랐다. 패티 김의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도 가슴을 적신다. 32년 전 이산가족찾기를 보며 한참 눈물짓던 42살 어머니는 올해 74살의 노인이 되어 극장 불편한 의자에 앉아 졸다가 깨다가를 되풀이하고 있다. 올해 내 나이 49살. 세월의 무상함과 삶의 덧없음이 문득 느껴져 더 많이 울었다. 생각해보면, 돌아가신 아버지도 극장 구경 한 번 제대로 못하였는데, 이런 날 다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그대로 눈물이 되어버렸다. 더 잘 해야겠고, 장인 장모에게도 더 잘 해야겠다.
201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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