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그래요, 청말띠 해라고 호들갑떨던 해이지요. 올 한 해는 행복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웃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딱 알 수 있습니다. 슬픈 날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기분 나쁘고 짜증나고 우울한 날이 없을 수 없었지요. 그런 날이 없다면 그게 인간입니까. 그게 사람 사는 모습입니까. 슬프고 고통스럽고 아프고 우울하고, 그래서, 골똘히 딴생각도 한 번씩 하는 게 인생 아닙니까. 그렇지만 또 이렇게 살았지 않습니까. 행복한 거지요.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더 많았다는 것 아닙니까. ‘살아남았다’고 하면 많이 슬프고, ‘살아냈다’고 해도 좀 씁쓸하고, 그래서, ‘잘 살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요.
웃는 날은 어땠을까요. 말하긴 그렇지만, 솔직히, 좀 허허로웠지요. 헛헛했습니다. 풀풀 날렸어요. 입술이 마르고 갈라지는 웃음이었지요. 돌이켜보니 웃음은 길지 않았어요. 행복은 깊지 않았어요. 오늘 웃으면서도, 내일의 고통을 예견하고 어제의 아픔을 추억하는 바람에 오히려 미안하기도 했지요. 그랬답니다. 그래도, 그렇기에 그것을 좀 더 확대, 증폭, 재생산하기 위해 애를 좀 썼던 것 같네요. 그 과정은 또 즐거움일 수 있었지요. 즐거움이라고, 기쁨이라고, 행복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서 하늘 보며 허허롭게 웃었지요. 빈들에 선 허수아비처럼...
슬픈 날은 어땠을까요. 가슴을 쳤습니다. 목이 메었지요. 눈으로 보는 걸 믿을 수 없고 귀로 듣는 걸 믿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 무너진 사회에서 차라리 맹인(盲人)이고 싶고 농인(聾人)이고 싶었지요. 극한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슬픔이었습니다. 깊은 슬픔이었어요.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슬픔이었답니다. 슬픔과 고통과 아픔은 스스로 살아 꿈틀거리며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었고, 놀라워라, 심지어 우리 꿈조차 잠식하곤 했지요.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숨도 쉬지 못하면서 살아있다는 게 어찌 가능하기나 했을까요. 기적이지요. 하지만 기적이 어디 있답니까.
행복은 어디에서 왔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행복을 즐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슬픔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 근원을 알아야만 다시는 그런 슬픔을 겪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슬픔과 고통과 아픔은, 단연코 우리 사회의 불통에서 왔습니다. 무지에서 왔습니다. 권위주의에서 왔습니다. 무언(無言)에서 왔습니다.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반역사에서 왔습니다. 이기주의와 유착의 첨단에서 왔다고 할까요. 증오와 분열의 종착점에서 만난 악마라고 할까요.
아, 어떡해야 할까요. 이 모든 것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한 것인데 말이에요. 불통도 사람의 몫이요 무지도 사람의 잘못이요 권위주의도 사람이 지은 것이니 말입니다. 말을 않거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또 어떻고요. 그러니 이 사람들을 어찌 할까요. 스스로는 귀를 닫아버리고, 다른 이들은 입을 못 열게 하는 저 ‘봉쇄신봉주의자’들을 어떡해야 할까요. 첨단과 종착점에 간발의 차이로, 혹은 아예 지향점이 달랐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다다른 이들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승자승의 원칙을 누가 용인하였을까요. 슬픔과 고통과 아픔의 근원을 조금은 알 듯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군요.
고맙습니다. 첫 번째는, 올 한 해 그나마, 짐짓, 웃음 지으며 살 수 있도록 해 준 많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슬픔을 딛고 고통을 견디며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해 준 주변 많은 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아, 그 가운데 소주와 막걸리도 있군요. 오, 고마워라. 그리고, 또, 고맙습니다. 우리에게 슬픔을 던져주고 고통을 안겨주며 짐짓 우리의 아픔을 모른 척해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갈 길을 그나마 좀더 선명하게 알려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반역사를 딛고 역사의 길로 나아갈 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가르쳐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행복한 연말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행복을 향하여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자니, 정말 ‘주옥’ 같은 눈물이 줄줄줄줄 흐르는군요. 술부터 줄여야겠습니다. 이기기 위해.
201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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