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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토토가’, 나에게도 90년대가 있었구나!

by 이우기, yiwoogi 2015. 1. 4.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눈은 웃고 있고 입도 덩달아 헤벌쭉 웃고 있는데 그냥 눈물이 나왔다. 침을 삼키고 겨우 진정을 했는가 싶었는데 또 몇 초를 못 참고 눈물이 났다. 대책이 없었다.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를 보곤, , 저런 노래가 있었지, 맞아, 나도 노래방 가면 한두 번 따라 부르곤 했는데, , 저 가수는 요즘 뭐하지?, 그래, 그래 그거야!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함성과 손짓을 내지르는 객석을 보면서, , 나도 저기 서 있을 수 있는데, 그래, 그래... 그렇지, 손가락은 그렇게 휘감아 찌르는 거야! 참 흥겹고 신나는 시간이었다.

 

김종국, 김정남, 김현정, 바다, 유수영, 서현, 김성수, 이재훈, 김예원, 조성모, 소찬휘, 이정현, 지누션, 엄정화, 김건모, 이본. 이런 가수들 중 몇몇은 잘 모른다. 그래도 다 알겠다. 누구누구 둘이 모여 터보인지는 모르지만 노래 들으니 알겠고, ‘이 누구누구인지 몰라도 노래 들으니 알겠고, 가요계의 요정이라는 ‘SES’가 누군지 까먹었지만 율동 보고 반주 들으니 알겠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에 입학한 우리(들 중 많은 이)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대중가요에 좀 무감각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같은 민중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같은 국민동요(?), 그리고 어쩌다 막걸리 집에 가면 눈물 젖은 두만강같은 전통가요를 주로 불렀다. ‘독립군가같은 노래를 전통가요라며 부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80년대에 인기 있던 대중가요는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배철수 나오는 ‘7080’ 같은 방송을 듣고 보면 또 기억나긴 하겠지.

 

90년대는 더했다. 92년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였고 당시 노래방이나 나이트클럽도 몇 번 드나들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데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제법 부르고 들었던 것 같은데, 가수와 노래 이름이 생각나지 않던 것이다. 90년대는 사라진 시대였다. ‘응답하라뭐 어쩌고 하는, 장안의 화제이던, 그 드라마를 볼 생각도 하지 않은 건, 나에게 90년대는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연말연시에 90년대 톱 가수 10팀을 소환했다는 토토가이야기가 SNS에 하도 자주 오르내리기에 그런 게 있구나 싶었다. 그러던 차에, 어제 케이블방송 채널에서 1227일 방송분 뒷부분을 잠시 보았다. 오늘은, 13일 어제 방송분을 다시보기하여 열심히 보았다. 눈물 흘리며 박수 치며, 혼자서 미친놈처럼 그렇게 90년대로 돌아가 보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첫 직장 선배 한 분은 노래방 갈 때마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불렀다. 앞의 긴 랩을 선배가 하고 나서 그 어느 날이라고 하던 부분부터는 그냥 합창이 되곤 했다. 방송에서도 그랬다. 얼굴 없는 가수(라고 하기엔 너무 잘 생긴) 조성모의 다짐은 따라 부르긴 힘들어도 내가 아주 좋아했던 노래다. 그래서 조성모의 후회라는 노래도 흥얼거리곤 했다. 롱다리 김현정의 이라는 노래에서 돌려놔라고 할 때 춤사위도 기억난다. 98년 결혼을 앞두고 처남, 처제와 함께 안산의 어느 노래방을 갔는데 그때 처제는 소찬휘의 ‘Tears’를 불렀다. 나는 심하게 전율했었다. 이정현은 '와'보다 '바꿔'가 더 인기 있었다. 당시 지방선거 로고송으로 최고 인기였던 '바꿔'는 세상을 다 바꿀 것만 같았었다. 엄정화의 ‘Poison’의 그 반주를 내 머리는 잊어먹었는지 모르지만 내 가슴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나면서 어느새 90년대 중반 어느 쯤에 나는 불려가 있었다. 가슴이 떨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은 나에게도 한 자리를 내어준 것이었다. 그렇게없어져 버린 줄 알았던 90년대가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가물가물 잊혀진 머릿속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쿵쾅쿵쾅 뛰는 가슴속 '심장의 고동'으로!

 

노래마다 다 똑같지는 않았는데, 90년대에는 이별 노래도 정말 신나고 경쾌하게 부른 것 같다. 사실 어느 시대에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아주 간혹 부모, 자연을 빼고 나면 대중가요가 주제로 삼을 만한 게 뭐 있었겠나. 아무튼 토토가에 나온 노래 대부분 이별을 주제로 했다는 공통점과 그 이별을 신나고 가볍고 경쾌하게 불렀다는 특징이 있다. 노래 가사 내용은 무겁고 우울하고 슬프고 비극적인데, 그 감정을 한두 단계 휘감아 증발시켜 버리고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의 일이라는 듯 팔짝팔짝 뛰며 춤을 추는 것, 그게 90년대식 사랑이고 이별이던가,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샌님인 나로서는, 우리가 2014년을 그렇게 보내고 2015년을 이렇게 맞이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안 보면 안 봤지, 보고서는 그런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래, 슬픔도 고통도 아픔도 분노도, 이렇게 한번 훌훌 털어버리면서 신나게 웃고 넘기는 거야. 그러고 나서 다시 천천히 단단히 가다듬고 다부지게 붙어보는 거야. 그래야 이길 수 있는 거야, 이런 생각도 잠시 해봤다. 나에게도 90년대가 있었다. 모처럼 흥겹고 신나게 잘 봤다. 고맙다.

 

2015.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