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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또 한 해가 멀어져 갑니다

by 이우기, yiwoogi 2014. 12. 31.

시간은 그냥 연속적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따져볼 것도 없이, 계절이라는 것은 인간이 봄이라고 해서 봄이고 여름이라고 해서 여름이지 그 경계가 어디 분명한 것이던가요. 계절 구분이 없는 곳도 얼마나 많은가요. 일 월, 이 월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한 시, 두 시 하는 것도 매한가지이지요. 강도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갈 뿐이고 땅도 끊어짐 없이 연결되어 있을 뿐인데, 인간들이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 소속, 여기부터는 다른 나라 소속이라고 억지로 금을 긋는 바람에 그리 된 것이지, 처음부터 물이든 땅이든 나뉘어 있었던 게 아니지요.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이것저것 제도를 만들고 금 긋기를 했지요. 그중에 가장 신기한 게 시간을 나눈 것 아닌가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야 어떡하든 이리저리 나누기를 하든 합하기를 하든 할 수 있겠는데 시간을 어떻게 나누었을까요.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했을까요. 하늘에 떴다가 지는 해와 달을 보고, 그것들이 어떤 일정한 규칙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겠죠. 결국 계절이 생기고 달이 생기고 날이 생기고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겼겠지요. 이제 와서 그것은 부정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단군 난 지 4347, 석가 난 지 2558, 예수 난 지 2014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나눠놓고 보면, 한 해가 간다는 건 엄청난 사건입니다. 굉장한 일이지요. 올 한해에 있었던, 태어남과 죽어감, 갈라짐과 합하여짐, 올라감과 내려감, 생성함과 소멸함, 만남과 헤어짐, 뜨거워짐과 차가워짐, 단단하여짐과 물러짐, 떠나감과 돌아옴을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렇게 많은 일이 ‘2014’라는 하나의 폴더에 담겨 역사의 저장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중에 이 폴더를 끄집어내어 일별해 볼 날이 있을까요.

 

이러한 중요한 시점에 지난해를 돌아보며 이러저러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지난 한 해는 뭐, 특별히 한 것 없이 쏜살같이 지나간 것 같네요. 원래 하던 일 열심히 하느라 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어 보이고, 원래 하지 않던 일을 애써 지어내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어찌 그리 바쁘게 지냈을까요. 아침 일곱 시 삼사십 분에 일하러 나와 오후 다섯 시쯤 집으로 돌아가는 반복된 삶이 조금 지겹기도 하고 힘겹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잘 살아온 것 같기도 합니다. 상 받을 만큼 잘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벌 받을 만한 과오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굳이 잘한 것을 이야기해 보자면, 내 이름으로 된 글을 몇 편 써보면서 글쓰기 감각을 조금 되찾은 것이라고 할까요. 스스로에게 칭찬해 줍니다. 좀 부끄럽네요. 그리고 사람을 많이 만난 것도 잘했다면 잘했다 할 수 있겠군요.

 

다가오는 해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다짐 또한 없을 수 없지요. 하던 일 더 열심히 하고 하지 않던 일 가운데 몇 가지는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직장일도 그렇고 가정일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몸 생각을 좀 많이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내년이면 마흔아홉 살이니 몸 사려야 할 나이는 충분히 된 것 같습니다. 술 줄여야겠지요, 운동 해야겠지요. 병원 갈 일 있으면 미루지 않아야겠습니다. 일단 내 몸이 건강해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지요. 자전거 좀 많이 타고 지리산까지는 엄두를 못 내겠지만 뒷동산에라도 자주 올라 보렵니다. 글쓰기는 계속 이어볼 생각인데, 더 진지하게 해볼 요량입니다. 가족 여행이나 영화관람 같은 것도 더 많이 만들어 보렵니다. 이것만 잘해도 한 해가 알찰 텐데 말이에요. 거기에다 이웃을 위해 무엇 한 가지라도 할 수 있는 깜냥이 되면 더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한 해가 또 멀어져 갑니다. 국민학교 입학하던 1974년이 잊혀진 지 오래고, 대학 들어가던 1986년 또한 기억에 가물가물하니 2014년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석으로 남겨지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2014년은 좀더 오래 기억에 남고, 억지로라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세월호 이야기입니다. 한국전쟁, 419, 518, 610 같은 역사적 사건과 맞먹는 중대사건 아니었는가요. 304명이 수몰되는 끔찍한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눈앞에서 보아야 했던 트라우마가 잊혀질 수 없겠지요. 그 뒤 이 사건을 해결해 가는 정치와 행정의 행태 또한 잊어선 안 되겠지요. 절대 잊을 수 없는 대사건을, 2014라는 폴더에 넣어 놓고 올해를 마무리합니다.

 

시간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연속적으로, 말없이, 잘도 흘러갑니다.

 

2014.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