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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조정래의 시선>을 읽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1. 15.

조정래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큰작가이다. 가수가 노래를 잘하면 국민 가수라 하고, 여성 아이돌이 예쁘장한데 노래도 잘하면 국민 여동생이라 하고, 텔레비전에 나와 짐 같은 걸 잘 옮겨주는 역할을 하면 국민 일꾼이런 이름들을 붙여준다. 그러나 조정래에게는 국민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주기에 마뜩잖다. 그는 대작을 여럿 발표했고 소설로서는 세우기 힘든 몇몇 기록도 세웠지만,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저어된다. ‘위대한이라고 하고 싶다. 그냥 그렇다. <조정래의 시선>에서는 중국을 다시 보고, 바로 보자는 이야기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조정래의 작가론과 문학론이 군데군데 소개된다.

 

중국을 다시 보고, 바로 보자는 이야기는 그가 소설 <정글만리>를 쓴 까닭이기도 하다. 중국을 다시 보고, 바로 봐야 하는 까닭은, 2010G2가 된 것을 기점으로 그전의 세계 공장에서 세계 시장으로 경제구조를 전환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국민 350만 명이 죽었고 중국 인민 3500만 명이 죽었다.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두 나라는 미래도 공유(협력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니다. 따라서 “<정글만리>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받는 데 비해 중국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나아가야 할 중요한 국가로 등장”(95)한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경멸하고 멸시하면서 자기들은 EU에 가입해야 한다는 세미나를 하는 위인들”(97)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까닭 없이(굳이 말하자면 까닭이 없는 건 아니지만) “중국 사람들은 게으르고 더럽고 중국은 짝퉁 천국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중국에 대해 다 안다고 한다. 조정래는 그건 참 경박하고도 위험한 인식이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은 고속철만큼 빠른 속도로 변화, 발전하면서 짝퉁도 줄어들고, 더러운 것도 깨끗해지고, 게으른 것도 부지런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1인당 GDP를 따지면 2만 달러가 넘는 인구가 이미 2억이란다. 엄청나다. 우리나라 국민은 5000만이다. 중국에서는 어겨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 3가지도 들려준다. 첫째 마오쩌둥에 대한 비난이나 험담, 둘째 중국공산당에 대한 불신이나 비판, 셋째 대만 독립의 지지가 그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 <정글만리>에 다 나온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조정래의 작가론이다. “소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총체적 탐구라는 관점으로 볼 때, 작가는 온갖 요소들을 다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학자다운 냉철한 눈, 철학적 통찰과 초월적 이성, 성직자다운 헌신과 너그러운 마음, 교육자와 같은 계몽성,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같은 냉정한 투시력과 소재에 대한 접근력,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꾼의 재치 있고 슬기로운 입담.”(38) “작가를 일러 시대의 산소이며 등불이고 나침반이라고 했다.”(185) “문학이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47, ‘태백산맥문학관에 쓰여 있는 문구다) 조정래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20년 동안 서재에 틀어박혀 쓰면서도 그것은 황홀한 글감옥이었노라 고백할 수 있는 근원은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한국문학이 죽고 있다. 장편까지도 온통 1인칭 사소설이 판을 치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만 본뜨고 있다. 후배들은 제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치열하게 다뤄 달라.”(206) 누가 새겨들어야 할까. 작가도 듣고 독자도 들어야 할 것 같다.

 

조정래는 말한다. “우리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 대한 건강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인생을 건전한 정신으로 당당하고 꿋꿋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인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무엇일까요? 그건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발견입니다. ‘뿐만이 아니고 당신도 발견하고, 그리고 우리모두를 발견하는 일, 그것이 인문학이 하는 일입니다. 그 발견은 곧 인간의 제각기 다른 개성 존중이고, 그것은 서로 다른 능력의 존중이며, 그것은 다시 인간의 상호 가치 존중으로 발전하며, 그것은 마침내 인간 존엄의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344~345) 이 두 마디면 족하다.

 

앞으로 10년 동안 장편 1권짜리 두 편, 3권짜리 두 편, 단편집 하나, 산문집 하나를 펴낼 계획”(154)이라고 하니, 그저 조정래의 건강을 기원할 따름이다. 이런 말 한두 개도 기억해 두고 싶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214)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다. 그리고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215)

 

2015.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