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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읽는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1. 20.

친구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술자리에서 화제는 무엇인가.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들을 하겠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도 하겠고, 남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도 하겠지. 범위를 넓혀가다 보면 우리 동네 이야기, 우리 시 이야기, 우리 도 이야기, 우리나라 이야기, 전세계 이야기까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지나온 과거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길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진지하게 작정하고 달려들면 원시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럴 때 좀 진지하고 지적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진지한 이야기는 잠시잠깐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술 취하여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가령, 갑자기 직장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정당한지, 그것은 결국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진지한 대화이다. 세금을 더 거둘 것인가 아니면 덜 거둘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논의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게 지적인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언론 또는 미디어가 있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결국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인지 말해보고, 언론 또는 미디어는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근본문제를 되짚어 보는 게 진지한 대화라고 할 수 있겠지. 우리나라와 북유럽 국가들은 경제체제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소련이 왜 무너졌는지 되돌아보고,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왜 목숨을 걸고 데모를 했는지 반추해보고,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어떤 과정을 거쳐 고착화했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는 것, 그게 진지하고 지적인 대화이다. 그런 대화를 하려면 총알이 필요하다. 개뿔,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 책은 총알을 제공해 주기 위해 쓴 책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적인 대화는 분명 놀이이지만 나의 이익을 위한 심오한 놀이이다. 스포츠, 연예, 이성 문제, 상사 욕하기도 분명 재미있는 대화놀이일 수 있으나, 경제와 정치에 대한 조금은 심오한 대화놀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조금은 더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놀이라고 하겠다.”(285)

 

조금 더 들어보자. “우리는(이 책에서는) 이제까지 보수와 진보, 그리고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대중은 주인으로서 선거를 통해 보수와 진보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다. 모든 책임은 대중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별하는 시야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그 선별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든 정치는 썩었다면서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사람에게, 정치적 무관심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실제로는 보수 정당에 표를 던졌으면서도 집권한 보수 정당이 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면서 열을 내는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어야 한다.”(285)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는 각각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안경이다. 중요한 건, 이 다섯 안경이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영역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핵심 논지에 있어서는 같은 진실을 공통분모로 갖는다. 그리고 그 진실은 구체적으로 이분화된 세계.(370)

 

이분화된 세계’. 이것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해결의 시작점이다.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많은 문제는 압축하고 단순화하여 놓고 보면, 세금을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 그리고 복지를 확대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 결정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하는 데 따라 민주주의와 독재주의로 나뉜다. 이런 식으로 역사와 경제와 정치와 사회와 윤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설명해 준다. 어렵지 않고 쉽다. 이걸 읽고 시험 볼 게 아니므로 외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힘은 친구들과 지적인 대화를 할 때 주머니 속에 든 총알이다.

 

A세계의 주인공은 소수의 지배자다. 역사 속에서 그들은 왕, 영주, 부르주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생산수단을 소유했고 두 번의 세계전쟁을 일으켰다. 경제에서 초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부르주아의 세계이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고 정부의 개입을 반대한다. 세금 축소와 복지 축소가 진행된다. 정치에서 보수는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 생산수단의 민영화, 정부 개입 축소, 세금 및 규제 완화가 이들의 지향점이다.

 

B세계의 주인공은 다수의 피지배자이다. 역사 속에서 그들은 노예, 농노,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했다.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했으나 현재로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에서 수정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는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체제이다.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의 개입을 강화한다. 세금이 인상되고 복지가 확대된다. 정치에서 진보는 노동자와 서민, 최소수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입장을 말한다. 생산수단의 국유화, 정부개입 확대, 세금 인상 및 규제 강화, 사회적 재분배가 이들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이런 기본 지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좀 더 지적 대화를 해보고 싶어진다. 선거가 다가올 때, 노동자가 파업을 할 때, 외국 선진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지구촌 어디에선가 전쟁이 일어날 때,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적 과정과 정치적 함의를 들춰보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어느 집단의 경제적 이익에 복무하는지 유추해보고, 나는 누구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인지,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진다. ‘한 권으로 편안하게 읽는 지식 여행서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쪽마다 빨갛게 밑줄을 그어가며 정색을 하고 읽어야 할 삶의 교과서이다.

 

대학생 시절 한두 번씩 읽었음직한 역사나 철학 책의 복습이라고 해도 좋고, 그런 시절을 겪지 못한 사람이라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인류의 역사와 정치, 경제에 대해 넓고 얕게 훑어본다는 생각으로 한번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현실 너머의 세계, 즉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를 다룬다는 2권을 기다리며.

 

2015.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