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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김주완의 <풍운아 채현국>을 읽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1. 14.

채현국은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이다.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가 있다. 지금의 경남대학교가 박종규(전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 씨 소유로 넘어가기 전 이 대학을 운영했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사가 이 분을 인터뷰했다. 인터뷰할 때 채현국 이사장은 절대 훌륭한 어른이나 근사한 사람으로 그리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다. 개차반처럼 살아놓고는 나잇살이나 먹은 뒤 이러저러한 언론에 근사하고 훌륭한 어른인 양 인터뷰하여 제 잘난 맛에 떠벌이고 사는 노인네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그 인터뷰가 실린 잡지를 수백 권 사서 뿌리고 다니는 것을 차라리 애교로 봐줘야 하는 세상 아닌가.

 

채현국 이사장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좋았다. 세상 흐름을 읽는 눈이 밝았던 것 같다. 아버지 효암 채기엽은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에게 담을 크게 가져라. 간은 작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하여야 하는 일에는 과감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에는 소심해야 한다.’는 뜻이란다. () 즉 쓸개는 과감하게 뭔가 일을 추진할 때 기능을 하고, ()은 할까 말까 좌고우면하는 기능을 하는가 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에 열정을 더 쏟으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 가르침을 채현국 이사장을 평생 실천하고 있었던가 보다.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래서 문홍주 장관에게 국립이나 공립으로 하라고 줬는데, 박종규가 가져가 버렸어요.” 지금의 경남대학교 이야기다. 채기엽은 해인대학이 바뀐 마산대학의 이사장이었고, 채현국도 이사였다. 학내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국가에 기부채납(국립이나 공립)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박종규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 가져갔다는 말이다. ‘가져가 버렸어요.’에 담긴 의미와 역사는 어떤 것이었을까. 문홍주 문교부 장관이 줘버린 거지.”란 말도 나온다. 아무튼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채기엽 이사장이 이사장 취임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고, 학생은 면학에만, 그리고 재단은 교수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위한 뒷받침에 전심하여 각자의 본분을 지켜줄 것을 강력히 당부했다고 한다. 1966년에 들으나 2015년에 들으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귀에 새겨들어야 할 명언이다. 이를 지키지 못하여 온갖 비리가 터져 나오고 부정부패가 만연해지는 것 아닌가. 고등학교라고 다를까. 그래서 채현국 이사장은 효암학원 소속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잘 가르치도록 뒷받침만 하고 있을지.

 

남은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정말 남 기죽이거나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 하고.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 만하지.” 인생의 달관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에 눈길이 머문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치사하고 비겁하게 살 수도 있다는 말 같다. 조금의 치사함과 비겁함은 갖고 있어야 나쁜 놈들 혼낼 때 치사하고 비겁하게(나쁜 놈이 볼 때는 더 치사하고 비겁하게 보이겠지만) 혼낼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올해초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채현국 이사장이 한 말은 더 유명하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진 않았지. 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 생각이 좀 엉뚱한 데로 흘러간다. 일단 노인이라 하면, 70살 정도를 기준으로 하면 되겠지. 65살로 봐도 되겠지.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 나이가 되면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고 걸음걸이는 느려진다. 말도 더뎌지게 된다. 판단이 늦거나 잘못될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뜻이다. 그런 노인들이 정치의 전면에, 경제의 맨 앞에 나서서 나라를 망친다는 뜻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 단체를 만들어 극우보수 집회에 나타나 엘피지 가스통 들고 설치거나 한다는 뜻 아닌가. 그런 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일생 동안 마음을 닦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뜻 아닌가. , 하여야 하는 일은 과감하게 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며 살라는 뜻이다. “농경 사회에서는 노인네의 경험이 지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이다.”라는 말이 귀에 들린다.

 

오척단구 거한, 당대의 기인,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 가두의 철학자, 발은 시려도 가슴은 뜨거웠던 맨발의 철학도,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열 손가락에 들었던 거부(巨富),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준 파격의 인간,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이런 말로는 채현국 이사장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 넓이와 깊이, 그리고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헤아릴 수 없다. 조만간 진주문고 주최로 열린다는 채현국 이사장 초청강연회를 기다리는 이유이다.

 

2015.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