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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생일

by 이우기, yiwoogi 2014. 12. 10.

온 동네 떠나갈 듯 울어젖히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671020(음력) 태어났습니다. 고향은 경상남도 진양군 미천면 안간리 숲골마을입니다. 1979년 진주로 이사와서 봉래동수정동장대동을 이사다녔습니다. 안간초등, 봉래초등, 진주중, 대아고, 경상대를 졸업한 뒤 경남일보에서 11, 뉴시스에서 6개월 일했고, 20043월부터 지금까지 11년 가량 경상대 홍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998614일 결혼하여 중학교 2학년 아들 하나 두었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남자는 길을 나설 때 우산 하나와 거짓말 하나를 갖고 다녀야 한다는 말을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병()자 직() 자를 쓰시는데, 가끔 내 이름에 직은 곧을 직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길 나설 때 거짓말 하나와 우산 하나를 들고 다니지 못했으며 곧게 살아오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 요새는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에 작은 우산 하나 넣어 다닙니다. 머리에 비 맞으면 좀 그러니까요.

 

초등학교 때 찍힌 사진을 보면, 반바지에 허리띠를 매고 다시 그 위에 긴바지에 허리띠를 매어 이중으로 허리띠를 매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참 바보 같은 놈이었을 겁니다. 구구단을 외워야 학교를 마치는데, 5×735라 해놓고 7×5를 답하지 못해 마지막까지 남아 벌청소를 한 적도 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진주로 전학을 와서는 공부는 더욱 못했고 친구들 사귈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는 두 곳을 다녔는데 정말 마음 둘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아예 뒤로 빠지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회색인간이었을 겁니다. 그건 딱히 전략이랄 것도 없이 그저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졸업할 때 평균 평점은 3.7이었으니 공부로써 인생의 승부를 걸기도 글렀고 그렇다고 무슨 기술을 배우거나 할 만한 처지도 못 되었지요. 군대 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찌 하다 보니 몸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이 오늘의 나를 있도록 하기 위한 어떤 운명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선배도 많고 사랑하는 후배도 많습니다. 물론 그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보다 더 소중한 인연은 없겠지요. 힘들 때 같이 술 마시며 위로해준 분들, 즐거울 때 함께 즐겁게 웃어준 분들, 외로울 때 말벗이 되어준 분들, 세상모르고 설치려고 할 때 가만히 손잡으면서 지긋이 눌러준 분들, 의기소침해 있을 때 어깨 두드려준 분들, 갈 길도 모르고 돌아갈 길도 잊어버렸을 때 촛불 밝혀준 분들...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오늘내일은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야겠습니다. 험한 세상 건너가기에 지혜가 턱없이 모자란 나를 믿고 살고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도 감사해야겠네요.

  

201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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