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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때문

by 이우기, yiwoogi 2014. 11. 22.

이렇게 말하는 광고가 있다.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비문이다. 즉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반드시 메모한 습관 덕분이었습니다.” 2가지가 문제다. 첫 번째, ‘메모하는이라고 현재형으로 하지 말고 메모한이라고 과거형으로 해야 한다. 비문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것 때문이다. 두 번째 때문입니다덕분이었습니다라고 해야 맞다. 그런데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가 보다. 몇 달째 계속 이 광고가 라디오에 나오고 있다.


때문앞에 오는 말이 뒤에 오는 일의 까닭이나 원인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뜻대로만 보면 위 광고 문장이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 때문이라는 말은 나쁜 일, 바라지 않던 일, 문제가 있는 일에 쓴다. 이건 사전의 뜻풀이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그렇게 써온 언중들의 언어습관이다. “국민들이 이렇게 힘들어진 건 대통령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라거나 내 가슴이 시퍼렇게 멍든 것은 나를 버리고 떠난 너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몇 해 전 광고에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라는 게 있었는데, 맞게 쓴 경우이다.

 

그러면 때문대신에 좋은 일, 바라던 일의 경우에 쓰는 말은 무엇인가. ‘덕분이다. “우리나라 문맹률이 낮은 것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덕분이다.”처럼 쓰면 된다. ‘때문은 순우리말이고 덕분은 한자어이긴 하다. 그래서 순우리말을 살려 쓰자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는 고민이 더 필요하겠다. 어쨌든 때문은 안 좋은 일에, ‘덕분은 좋은 일에 쓰는 게 어울린다.

 

이렇게 멀쩡한 낱말이 언중 사이에서 오랜 세월 쓰이면서 좋은 의미 또는 나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다른 보기로는 장본인이라는 말이 있다. ‘장본인어떤 일을 빚어낸 바로 그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한 데에 쓰인다. “옛 한나라당 이○○ 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제기한 이른바 병풍(兵風)’ 사건의 장본인 김○○ (52)가 경찰 수사를 무마해주겠다며 돈을 받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검찰에 20일 체포됐다.”라는 신문 기사가 보이는데, 맞게 쓴 경우이다.

 

그러면 좋은 의미로 쓸 때는 어떤 말을 쓸까. ‘주역’, ‘주인공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기사 제목이 보인다. “○○ 슈퍼스타K6’ 5억 주인공, 누르고 우승확정이렇게 쓰면 맞게 쓴 경우이다. 반대로, “○○ 별세, ○○와 남다른 인연 재조명○○을 만들어준 장본인’”처럼 쓰면 곤란하다. ○○가 김○○이 잘되도록 도와준 것이므로 장본인이라고 하기보다 주역이나 주인공이라고 쓰는 게 어울린다. 자칫하면, 좀 비약이긴 하지만, ○○가 김○○을 나쁜 길로 인도한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때문이라고 쓸지, ‘덕분이라고 쓸지 1초만 생각하면서 말하면 말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장본인주인공을 잘 가려 쓰면 말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말을 바꿔 쓰더라도 명백히틀렸다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잘 가려 쓰면 좋겠다. “이런 말을 잘 가려 써서 글 잘 쓰는 사람, 말 잘 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을 받는 주인공이 된다면, 그건 바로 제 덕분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201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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