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배달겨레는 웃어른 공경하는 마음이 아주 높고 크다. 공경하는 마음을 말과 글에서 잘 표현하여 왔다. 좋게 말하면 높임법(존대법, 경어법)은 우리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로 인하여 우리말에서 높임법은 좀 복잡하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각 다른 높이를 가진 웃어른이 여러 명 함께 있을 때는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나라 사람끼리는 잘 헷갈리지 않고, 조금 헷갈리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처음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게 높임법이라고 한다. 국어학자 가운데 높임법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 외국에 나가서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프랑스어를 배울 때 동사활용이 복잡하다고 프랑스어의 가장 큰 특징인 동사활용을 단일화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높임법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비판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는 좀 희한하고도 아주 특이한 쓰임을 살펴보려고 한다. ‘먹다’의 높임말은 ‘잡숫다’이다. “맛있는 것 많이 잡숫고 힘내세요.”처럼 쓴다. ‘들다’도 ‘먹다’의 높임말이다. “이것 좀 드세요.”라고 말한다. ‘들다’ 자체가 높임말인데 ‘시’를 넣어 쓰는 경우가 많다. “요것 좀 드셔 보세요.” 조금 이상하지만 봐줄 만하다.
듣는 힘이 약해져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귀먹었다’라고 한다. ‘가는귀먹다’라는 말도 있다. ‘가는귀’는 ‘작은 소리까지 듣는 귀 또는 그런 귀의 능력’을 가리킨다. 그럼 이 ‘귀먹다’의 높임말은 어떻게 써야 할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는귀먹어 소리를 잘 못 듣는 것을 두고 “그 할머니 귀를 잡수셔서 잘 안 들린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다. 딴에는 할머니를 높여주느라 하는 말이 이렇다. “가는귀를 잡수셨나, 손자들이 그렇게 울고 있는데도 못 들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세 많은 노인들에게 ‘먹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하여 ‘잡숫다’를 쓰는 것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미국 권투선수 타이슨처럼 남의 귀를 잘 물어뜯는 사람이 있는가 싶었다. 귀를 잡숫다니…. ‘귀먹다’는, ‘귀가 막히다’에서 온 말이 아닌가 싶다. 막혔으니 잘 안 들릴 수밖에 더 있겠나. ‘먹먹하다’가 ‘막힌 것처럼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니, ‘귀가 먹먹하다’에서 ‘귀먹다’가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귀먹다’를 높여 이르느라고 ‘귀 잡수셨다’라고 말하는 건 아주 많이 어색하고 이상하다. 귀먹다의 높임말은 ‘귀먹으셨다’쯤 될 것 같은데, 이것 역시 좀 이상하다.
남이 이야기를 하는데 중간에 말을 자르면 “말 좀 잘라먹지 마라.”고 한다. 이 ‘잘라먹다’도 윗사람에게 말할 때 “제 말씀 좀 잘라 잡숫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많이 이상하고 어색하다. 이 ‘먹다’도 입으로 먹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냥 “제 말씀 좀 자르지 마세요.”처럼 하면 될 듯한데.
되도록이면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춰야만 한다는 의식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찻집에서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고, 가게에서 “잔돈은 500원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옷가게에서 “손님 몸에 맞는 사이즈(크기)는 없으십니다.”라고 말하는 세태. 뭔가 좀 문제다.
높임말, 존댓말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와 미풍양속을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거나 잘못 사용하면 아름답지도 않게 되고 미풍양속도 아니게 된다. 남는 궁금증…. 과연 귀는 맛있을까? (2014. 10. 14. 2017. 3. 6. 고침)
'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때문 (0) | 2014.11.22 |
---|---|
비행기 값 (0) | 2014.10.21 |
340000000000원 (0) | 2014.09.16 |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 (0) | 2014.09.16 |
미소라면? 된장라면! (0) | 2014.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