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한 대에 얼마쯤 할까. 사람을 태워 나르는 여객기 말이다. 못해도 수억 원은 하겠지. 수십억 원쯤 할까. “요새 사천에서 제주 가는 비행기 값이 얼마인가?”라고 물으면 “응, 5만 원쯤 하겠지.” 이렇게 대답들 한다. 그런 대화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천에서 제주 가는 비행기가 얼마나 크고 몇 명을 태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마 5만 원 정도 하겠나.’
그렇다. ‘비행기 요금’이라고 말할 것을 ‘비행기 값’이라고 말한 게 잘못이다. ‘값’은 물건을 사고팔기 위하여 정한 액수이다. 교환 개념이다. 값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이 남의 손에서 내 손으로, 또는 내 손에서 남의 손으로 건너가는 것에 대한 대가를 뜻한다. ‘요금’은 남의 것을 사용하거나 빌려 쓴 데 따라 대가로 지불하는 돈이다. 어떤 물건이 오고가는 것은 아니다. 두 말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비행기 요금은 ‘비행기 삯’ 또는 ‘비행기 운임’이라고 해도 된다. 열차 운임, 배 운임, 배삯... 이렇게들 쓴다. ‘열차 삯’은 좀 어색하다.
‘집값’은 집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이다. 보통 서른 평 아파트를 2억 원 한다고 하면, 서른 평짜리 아파트를 내가 갖게 되고 내 주머니에서 2억 원을 상대방에게 준다. ‘전세’는 어떤가. 전세는, 원래 집 주인은 그대로인데 정한 기간 동안 그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기간이 끝나면 나가야 한다. 물건이 오고간 게 아니다. 그때 주는 돈은 집을 일정 기간 사용한 데 따라 지불하는 돈이다. 이를 두고 ‘전셋값’이라고 하면 될까. 당연히 안되지. 그러면 뭐라고 할까. ‘전세금’이라고 하면 된다. ‘전세금’은 전세를 얻을 때 그 집의 주인에게 맡기는 돈이다. ‘전셋돈’이라고 해도 된다. 똑같은 말이다. 월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일부 사전에는 ‘전셋값’을 올려놓았고, 많은 신문과 방송은 ‘전셋값’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비행기 삯을 비행기 값이라고 해도 뭐라고 나무라는 언론이 잘 보이지 않고, 전셋돈을 전셋값이라고 해도 잘못을 고쳐 주는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수도요금을 ‘수도세’라고 하고, 전기요금을 ‘전기세’라고 하는 것도 비슷하다. 수돗물 쓴 만큼 값을 치르는 것을 세금이라고 하고, 전기 쓴 만큼 돈 내는 것을 세금이라고 하게 된 세상인데, 요즘은 이런 걸 가지고 따따부따 따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심지어 잘못된 말이 언중의 고임을 받아 버젓이 사전에 오르기도 한다. 원래 말이란 게 그렇게 생명을 얻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그러한 것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만일 어느 비행기 회사 사장한테 “사천에서 서울 가는 비행기 값이 얼마요?”라고 묻고, 그 사장이 “예, 7만 원입니다.”라고 친절히 대답해 주면, 그 자리에서 7만 원 던져주고 비행기를 갖고 가 버려도, 그 사장은 별로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러고 싶은 적이 있었는데 갖고 갈 재주도 없을 뿐더러 갖고 간 비행기를 놔둘 데가 없어 참곤 했다. (201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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