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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비행기 값

by 이우기, yiwoogi 2014. 10. 21.

비행기 한 대에 얼마쯤 할까. 사람을 태워 나르는 여객기 말이다. 못해도 수억 원은 하겠지. 수십억 원쯤 할까. “요새 사천에서 제주 가는 비행기 값이 얼마인가?”라고 물으면 , 5만 원쯤 하겠지.” 이렇게 대답들 한다. 그런 대화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천에서 제주 가는 비행기가 얼마나 크고 몇 명을 태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마 5만 원 정도 하겠나.’


그렇다. ‘비행기 요금이라고 말할 것을 비행기 값이라고 말한 게 잘못이다. ‘은 물건을 사고팔기 위하여 정한 액수이다. 교환 개념이다. 값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이 남의 손에서 내 손으로, 또는 내 손에서 남의 손으로 건너가는 것에 대한 대가를 뜻한다. ‘요금은 남의 것을 사용하거나 빌려 쓴 데 따라 대가로 지불하는 돈이다. 어떤 물건이 오고가는 것은 아니다. 두 말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비행기 요금은 비행기 삯또는 비행기 운임이라고 해도 된다. 열차 운임, 배 운임, 배삯... 이렇게들 쓴다. ‘열차 삯은 좀 어색하다.


집값은 집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이다. 보통 서른 평 아파트를 2억 원 한다고 하면, 서른 평짜리 아파트를 내가 갖게 되고 내 주머니에서 2억 원을 상대방에게 준다. ‘전세는 어떤가. 전세는, 원래 집 주인은 그대로인데 정한 기간 동안 그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기간이 끝나면 나가야 한다. 물건이 오고간 게 아니다. 그때 주는 돈은 집을 일정 기간 사용한 데 따라 지불하는 돈이다. 이를 두고 전셋값이라고 하면 될까. 당연히 안되지. 그러면 뭐라고 할까. ‘전세금이라고 하면 된다. ‘전세금은 전세를 얻을 때 그 집의 주인에게 맡기는 돈이다. ‘전셋돈이라고 해도 된다. 똑같은 말이다. 월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일부 사전에는 전셋값을 올려놓았고, 많은 신문과 방송은 전셋값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비행기 삯을 비행기 값이라고 해도 뭐라고 나무라는 언론이 잘 보이지 않고, 전셋돈을 전셋값이라고 해도 잘못을 고쳐 주는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수도요금을 수도세라고 하고, 전기요금을 전기세라고 하는 것도 비슷하다. 수돗물 쓴 만큼 값을 치르는 것을 세금이라고 하고, 전기 쓴 만큼 돈 내는 것을 세금이라고 하게 된 세상인데, 요즘은 이런 걸 가지고 따따부따 따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심지어 잘못된 말이 언중의 고임을 받아 버젓이 사전에 오르기도 한다. 원래 말이란 게 그렇게 생명을 얻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그러한 것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만일 어느 비행기 회사 사장한테 사천에서 서울 가는 비행기 값이 얼마요?”라고 묻고, 그 사장이 , 7만 원입니다.”라고 친절히 대답해 주면, 그 자리에서 7만 원 던져주고 비행기를 갖고 가 버려도, 그 사장은 별로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러고 싶은 적이 있었는데 갖고 갈 재주도 없을 뿐더러 갖고 간 비행기를 놔둘 데가 없어 참곤 했다. (201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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