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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도서정가제

by 이우기, yiwoogi 2014. 11. 20.

2013년 한 해 동안 내가 산 책은 대략 80권 남짓 된다. 이 가운데 20권쯤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줬다. 10권 남짓은 아들 책이다. 10권은 아내의 책이다. 이 가운데 인터넷 서점에서 산 책이 70%를 넘는다. 나머지 대부분은 진주문고큰바위서점에서 샀다. 아주 일부는 헌책방이나 여행길에 샀다. 올해 산 책은 조금 적을 듯하다. 그새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큰바위서점은 문을 닫았다. 1000원 할인권은 쓸모없어져 버렸다.

내일부터 도서정가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까닭은 동네서점이 문을 닫고 출판사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아서 동네서점이 문을 닫고 출판사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까닭은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출판사에서 내는 책이 시답잖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책을 열심히 읽으려 하고 출판사가 좋은 책을 꾸준히 펴내면 왜 서점이 망하고 출판사가 불황을 겪겠는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1년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에 보면 성인 1명이 1년 동안 9.9권을 읽은 것으로 나와 있다. 2013년엔 다시 9.2권으로 줄었다. 도서정가제 이후 이 수치가 올라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러면 국민들이 왜 책을 읽지 않겠는가. 2013년 문체부에서 국민독서실태를 조사했더니, 평소 책 읽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39.5%), 다음으로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17.1%), ‘다른 여가활동으로 시간이 없어서’(16.1%) 순으로 나타났다(학생의 조사 결과는 생략). 개인적으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즐거움과 중요함을 가르치지 않고 입시경쟁 속에서 주입식 교육만 해대는데 성인이 되어 시간이 남아돌고 돈이 남아돈들 책읽기 습관이 들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어불성설이다. 나는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이고 싶다. 우리 사회에 책보다 더 신기하고 희한하고 웃기고 즐겁고 놀라 자빠질 만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돌아가는 것 보고 있으면 술맛은 좋아지고 책읽기는 싫어지게 돼 있다. 안 그런가.

출판사들은 얼마나 시답잖은 책을 내는가.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인터넷 서점에서 오래 된 책은 값을 크게 깎아서 판다기에 도대체 어떤 책이 있는가 싶어 작정하고 1만 권을 일람해 봤다. 나는 기본적으로 출판을 통하여 문화를 부흥시키고 지식을 유통하며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제고하는 분들, 즉 출판인을 대단히 존경하는 편이지만, 아주 많은 출판사는 아주 심각하게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미 있는 책을 적당히 짜깁기하여 내놓기도 하고, 어떤 외국 책의 번역서는 도대체 몇 종류가 나와 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이며, 2000권을 찍었는데 20권이나 팔렸을까 싶은, 책 같지도 않은 책도 부지기수다. 종이 값이 아깝고 그 종이에 바쳐진 나무가 불쌍해 보이는 책도 늘렸다. 솔직히 안 그런가. 그런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책이 안 팔린다며 내지르는 악다구니엔 귀를 막아도 된다.

책 좀 사 읽는 사람은 인터넷 서점으로 가게 돼 있다. 왜 그런가. 지은이별로, 출판사별로, 열쇳말별로, 출판연도별로 책을 찾기 쉽다. 책에 대한 정보와 지은이 소개가 많고 자세하고 친절하다. 동네서점에선 거의 불가능한 게 인터넷 서점에서는 매우 쉽게 된다. 10% 할인은 기본이요 책을 살 때마다 점수를 쌓아주고 내가 올린 독후감이나 추천의 말에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면 또 얼마씩 준다. 모두 현금과 같다. 제휴카드를 쓰면 할인폭은 더 커진다. 많이 팔린 책을 사면 이런저런 선물을 끼워준다. 책은 오늘 주문하면 내일 온다. 서울부산 같은 큰 도시에서는 오전에 주문하면 퇴근 전에 갖다 준다. 주차할 곳도 마땅찮은 동네서점을 일부러 갈 까닭이 있겠나. 인터넷 서점과 동네서점에서 똑같은 값으로 판다고 해도 인터넷 서점이 이길 게 뻔하다. 나는 그렇게 본다.

도서정가제 이후 책이 좀 잘 팔릴까. 출판사 형편은 좀 나아지고 동네서점이 기지개를 켤까.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바쁘고 책 읽는 습관도 없고 프로경기나 낚시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문화 활동은 극장을 찾는 것으로 갈음한다. 좋은 책은 간혹 영화로 만들어지니까 책을 읽은 것과 같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는 책으로 나온다. 그게 그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책을 사서 일부러 애 터지게 읽을 까닭이 없다. 국민들은 책읽기 말고도 할 일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주머니는 너무 가볍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인터넷 서점이 지나치게 책을 할인하여 파는 바람에 동네서점이 어려워진 데 대해 동의한다고 하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지에스마트 따위 대형할인점들도 생필품 정가제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빵집도 마찬가지다. 그들 때문에 동네 구멍가게 죄다 문 닫고 망해먹은 주인들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동네 빵집 사장님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왜 책만 도서정가제라는 것을 만들고 나라에서 법이라는 칼을 들이대며 가격을 강제로 규제하는가.

정부는 이렇게 말한다. 도서정가제가 문화를 보호육성하고 지식정보의 유통질서가 가격경쟁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그렇다면 국민들이 마음 놓고 책 좀 읽을 수 있게 일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임금을 더 많이 주는 게 먼저 아닐까. 어릴 때부터 영어, 수학, 과학의 올가미에 갇히지 않고 고전이나 소설, 수필, 시만 열심히 읽어도 대학에 가고 그렇게 졸업하여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실용서는 제대로 만들고 외국책 번역도 너무 남발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리고 문화를 보호, 육성하거나 지식정보를 유통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쓰잘머리 없는 출판사들은 좀 정리하는 게 어떻겠나, 싶다. 201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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