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자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해 왔는데 많은 사람이 ‘짜장면’이라고 하니, 하는 수 없이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했다. ‘놀’이 맞았는데, ‘노을’이라고 하는 사람과 ‘놀’이라고 하는 사람이 반반쯤 되니 둘 다 맞는 것으로 인정했다. 말이란 이런 것이다. 딱 하나를 정해놓고 모든 사람이 항상 그대로 말하고 쓰라고 하긴 어렵다. 처음 정한 게 잘못됐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그 말을 쓰면 표준어의 자격을 얻고, 그렇지 않은 말은 어느새 비표준어가 된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주위에서 ‘동거동락’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원래 ‘동고동락’(同苦同樂)이 맞는 말이다.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항상 함께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몇 해 전 한 방송국에서 연예인들을 한곳에 가둬놓고 같이 살게 하면서 어떤 놀이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는데, 그 프로그램 제목이 ‘동거동락’(同居同樂)이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동거동락’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한 집에 살면서 같이 즐기거나 또는 슬픔을 나누는 사이, 즉 가족이나 부부를 가리키는 말’쯤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나중엔 ‘동고동락’이라는 말과 ‘동거동락’이라는 말이 각각 조금 다른 말로 쓰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왈가왈부’(曰可曰否)라는 말이 있는데, 주변에서 ‘왈가불가’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왈가왈부’는 옳으니 그르니 말한다는 뜻이다. 왈(曰)이 말하다는 뜻이다. ‘왈가+왈부’의 구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왈+가, 왈+불가’(즉, 왈+가ㆍ불가) 이렇게 이해를 하는 건지, ‘왈가불가’라는 말을 곧잘 쓴다. 설득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나중엔 ‘왈가불가’가 맞고 ‘왈가왈부’는 ‘왈가불가’의 잘못 쓰임으로 사전에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몸도 목숨도 다 된 것이라는 뜻으로, 몹시 위태롭거나 절박한 지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이다. 몸도 끊어지고 목숨도 끊어질 정도라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절대절명’이라고 말한다. ‘절대’는 ‘대립되거나 비교될 만한 것이 없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를 말하는데, 목숨이 끊어질 만큼 위급한 상황, 즉 절대적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절대절명’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걸 보면, 이 말도 앞으로 당당하게 사전에 오를지 모르겠다.
그러면 이런 현상은 바람직한 것일까. 동거동락이 동고동락을 몰아내고, 왈가불가가 왈가왈부를 이기고 절대절명이 절체절명의 자리에 올라앉는 게 바람직한 것일까. 나는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래 맞는 게 있고 틀린 게 있으면 많은 사람이 맞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이 성공을 거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렇다고 본다.
잘못된 말을 버젓이 쓰면서 “원래 말이란 그런 거야.”라거나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뜻만 통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해도 몇몇 사람은 “말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말이 바뀌어 가더라도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 혼란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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