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읽은 도정일 교수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문학동네)에서 대학 또는 대학교육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서 여기에 옮겨 놓는다. 쓰잘데없는 일은 아니겠지?
○ “이 대학에는 어떤 학생들이 옵니까?”라는 학부모 질문에 “어려서 질문이 많았던 아이들이 자라 우리 대학으로 옵니다”라고 대답한 총장이 있다. 그는 질문의 위대함과 경건함을 아는 사람이다. 질문이 죽으면 호기심도 죽고 호기심이 죽으면 탐구의 열정도 죽는다. -‘질문을 잃어버린 아이들’(67쪽)에서
○ 대학을 다닌다는 것과 여행의 경험 사이에는 모종의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 여행의 경우처럼 대학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 쥐었던 것도 일단 놓는 곳, 거기가 대학이다. 놓지 않고는 우리가 대학에서 새로운 것을 만날 가능성은 없다. -‘여행자의 깨침-대학 신입생을 위하여’(116~117쪽)에서
○ 자기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질문 던질 줄 아는 성찰과 비판의 능력이다. 질문하는 능력의 확장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가 대학에 인정하는 높은 특권이 대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다. -‘여행자의 깨침-대학 신입생을 위하여’(117쪽)에서
○ 오늘날 대학은 산학 복합체의 한 구성 요소이며 시장기제의 일부다. 시장의 세계화라는 외적 환경 변화가 대학에 강요한 것은 대학교육의 목표와 성격 자체를 시장에 맞추어 뒤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다. 오늘날 한국 대학에는 ‘교육’이 있다기보다는 ‘훈련’만 있다. -‘이 시대의 스승상을 말하기’(173쪽)에서
○ 작년(2006년) 6월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당시 총장 로런스 서머스가 들려준 축사의 한 대목을 전달해주고 싶다. “나는 하버드 4년이 여러분들에게 편안한 안락지대 바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 생각의 힘을 인정하며 바른 논리와 사유에 입각한 토론으로 세계를 바꾸어나갈 능력, 다수가 틀렸을 때에는 그 다수에 외로이 맞설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었기를 희망한다.” 하버드가 길러내고자 하는 것은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생각의 창조자, 생각의 실천자라는 말도 그의 축사의 일부다. -‘하버드 대학생들의 눈물’(277쪽)에서
또 도정일 교수의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문학동네)에서도 한 대목을 옮겨 놓고 싶다.
○ 대학은 이 종류의 반대 메시지를 발하기 위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사회제도들 중의 하나이다. 시대가 정신없이 변화를 추구할 때 그 변화의 성질을 점검하고, 시대가 변화의 목적(무엇을 위한 변화인가?)을 따지지 않을 때 그 목적을 심문하는 곳이 대학이다. (…) 시대가 눈멀지 않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대학의 할 일은 무엇인가? 대학의 존재 이유는 시대 변화를 따라간답시고 정신없이 변화의 꽁무니를 뒤좇는 데 있지 않고, 무수한 장님들을 길러내어 장님의 시대를 더욱더 장님의 시대이게 하는 데 있지도 않다. 대학은 변화의 와중에서도 변화의 성질을 따지고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곳이다. 그 질문이 살아 있을 때에만 대학은 단순한 변화의 추종자이기를 넘어 필요한 변화의 설계자가 될 수 있다. -‘이성의 왼손과 오른손’(232~23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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