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욕망의 길이 있다. 출세의 길이 있고, 탈세의 길이 있고, 친구를 밟고 서는 길이 있고, 자신을 비싸게 파는 기술이 있고, 타인의 잉여노동을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길이 있고, 그렇게 흡수한 재화로 우아한 소비를 즐기는 길이 있다. 책 속에 허영의 길이 있다. 교묘한 이미지 연출로 자신을 포장하는 길이 있고, 유명한 사람을 흉내내며 사는 길이 있고, 자본가를 위해 기꺼이 인생을 탕진하는 길도 있다.
책 속에 복종의 길이 있다. 가진 자에게 머리 조아리는 길이 있고, 국가에 사회를 복속시키는 길이 있고, 맹목적 믿음을 신에게 보내는 길도 있다. 그리고 세상의 본질을 망각하는 길이 있고, 삶의 본질을 거꾸로 파악하는 길이 있다. 책 속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그 길들 대부분은 체제에 대한 복종과 순응으로 통한다. 저항과 해방의 길은 실낱 같은 샛길도 찾아보기 어렵다. 자본은 책을 만들고, 책은 자본을 만든다."
박남일이 쓴 <어용사전>(서해문집, 2014. 4. 16.) 398~399쪽에 나오는 글이다. 대단한 독설이고 역설이다. 책을 잘 가려 읽어야 한다는 선인들의 말씀을 섬뜩하게 들려준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 나쁜 책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늘 책 고르기는 힘들다. 읽다가 던져버리거나 책꽂이 장식용으로만 쓰는 책도 더러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 <어용사전>에는 어떤 길이 있을 것인가. 책 찍은 날이 하필 2014년 4월 16일이구나. 그것참.
2014.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