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이순신

by 이우기, yiwoogi 2014. 8. 21.

해마다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 되면 진주 대아고등학교 전교생은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을 한다. 이 행군을 처음 제창한 분은 고(故) 아인(亞人) 박종한(朴鐘漢, 1925.3.15.~2012.5.7.) 교장 선생님이시다. 몇 해 전 고등학교 총동문회 행사 때 펴내는 <오민대> 편집을 위하여 아인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대아고등학교가 해마다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을 하는 것은, 그가 위대한 장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서도 아니라고 했다. 그가 세계 해전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훌륭한 전략가여서도 아니라고 했다. 23전 23승 세계 해전사에서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불패 신화의 주인공이어서도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선생님은 “우리가 충무공 탄신일에 행군을 하는 것은 모함에 의하여 모든 것을 빼앗긴 상태에서, 엄청난 분노와 억울함을 모두 던져버리고,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순정(純情)한 마음으로 백의종군(白衣從軍)하신 그 뜻을 기리기 위해서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1960년대 말 처음 행군을 할 때는 이순신 장군이 한양에서 고초를 겪다 풀려나 합천 초계로 내려오던 그 길, 백의종군로(白衣從軍路)를 그대로 따라가는 행군을 펼쳤다.  만일 '전쟁영웅' 이순신을 기리려 했다면 남해안에 흩어져 있는 여러 승전지를 찾아가는 행군을 했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선생님 몇 분과 학생 간부 몇 명이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행군로는 몇 차례 바뀌었다. 참가하는 학생도 전교생으로 늘었다가 사정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십대 후반 젊디젊은 학생들에게 아인 선생님이 가르치려 한 정신이 ‘백의종군’이라는 것은 변치 않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이 한창이던 1595년 2월 26일 서울로 압송되어 3월 4일 투옥되었다. 가혹한 문초와 함께 죽여야 한다는 주장도 분분했다. 판중추부사 정탁(鄭琢)이 올린 신구차(伸救箚;구명 진정서)에 힘입어 도원수 권율 막하에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특사되었다. 28일간의 옥고 끝에 4월 1일 석방된 충무공은 권율의 진영이 있는 합천 초계로 백의종군의 길을 떠났다. 요즘으로 치면 해군참모총장에서 하루아침에 이등병으로 강등당한 것이다. 아니 아주 민간인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옳다. 백의종군 도중 충남 아산에 이르렀을 때는 어머니 부고를 받았으나 죄인의 몸으로 잠시 성복(成服)하고 바로 길을 떠나야만 했다고 한다. (다음 백과사전 참고함)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억울하게 빼앗기고 모진 고문을 당하며 정략에 휘둘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충무공은, 모든 분노와 억울함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백의종군한 것이다. 그 마음을 기리고 본받자는 것이다. 그 정신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되새기자는 것이다. 그 단순하고 순정한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충무공 정신의 고갱이가 아닐까. 아인 선생님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치려 하셨고, 나는 그 가르침은 진정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행군하는 학생들은 어떤 마음일까. 영화 <명량>을 보는 사람들은 이순신의 어떤 것을 본받고 싶어 할까, 조금 궁금해진다.

 

2014. 8. 21.

'페이스북에서 퍼나른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모습  (0) 2014.08.31
책 속에 길이 있다  (0) 2014.08.31
갈등  (0) 2014.08.20
출근 준비  (0) 2014.08.20
가족 나들이-산청  (0) 201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