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에서 나는 사진만 열심히 찍으면 된다. 무대 위 어떤 모습을 어느 위치에서 찍을지만 생각하면 된다. 한두 번 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행사 순서는 머릿속에 훤하다. 사진 찍을 위치도 뻔하다. 결국 쓰일 사진은 두세 장밖에 안 된다는 것도 이미 잘 안다. 전체 행사의 흐름도 뚜르르 꿰고 있다. 십 년 넘게 해마다 두 번씩 하는 일이니 오죽하겠나.
빽빽이 들어찬 손님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면서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오다가다 아는 사람 있으면 한두 장 찍어주기도 한다. 물론 사진도 전해준다. 취재기자가 오면 일부러 찾아가 가볍게 감사 인사도 건넨다. 내 하는 일은, 늘 그렇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 한 사람쯤은 없어도 행사하는 데는 거의 지장없다. 나는 무대 위 주인공도 아니고, 무대 아래 주인공도 아니다. 중요한 진행요원도 아니다. 있으면 좋을 듯하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아주 간혹 찾기도 하겠지만 찾아지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래서 마음이 홀가분하고 얼굴에 여유로움이 넘쳐야 한다. 피로감이나 긴장감 같은 건 없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된다.
그런데 오늘, 나도 모르게 찍힌 내 모습을 보면 참 가관이다. 행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도 혼자 긴장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된통 뒤집어쓰는 운명의 주인공 같다. 저 순간 무대 위의 무엇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저래 갖고 제 명대로 살겠나, 싶다.
그래도, 이맛살 찌푸리고 긴장하고 있으면 혹시 부지불식간에 생길지 모르는 아주 자그마한 실수나 오류를 아무도 모르게 살짝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밑도끝도없는 생각을 혼자서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게 밥벌이하는 자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201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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