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한가운데엔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낡았지만 먼지를 뒤집어쓰지는 않았다. 일제(日製)였다. 스피커가 양쪽에 있고 전기를 켜고 끄는 단추와 주파수를 맞추는 단추, 소리를 높이고 낮추는 단추가 있었다. 죽 당기면 길게 뽑혀 나오는 안테나도 귀퉁이에 달려 있었다. 조그마한 통 속에 사람이, 그것도 몇 명이나 들어가 있다는 게 신기하여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손대면 고장 난다.”고 점잖게 타이르곤 했다. 건전지는 언제 어디서 사서 갈아 끼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 가운데 가장 먼저 기억나는 노래는 박일남의 ‘갈대의 순정’이다. 제목이 ‘갈대의 순정’이라는 것은 한참 후 막걸리 집에서 알았지만 그 음성과 그 반주는 내 가슴과 머리에 곱게 채색되어 있다. 일고여덟 살은 되었을까. 마당에서 딱지치기, 구슬치기로 노느라면 언제나 라디오에선 노래가 나왔다. 남인수와 김정구, 황금심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자랐다. ‘꿈꾸는 백마강’, ‘님과 함께’, ‘고향역’, ‘가지 마오’를 그 시절 흥얼거렸다. 아버지는 마루에서 목침을 베고 코를 곯았다. 그 노래들은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부르곤 한다. 나는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 또는 ‘추억의 가요’에 가깝다.
‘마루치 아라치’라는 어린이 연속극도 그때 들었다. ‘비봉산의 메아리’나 ‘싱글벙글 쇼’도 그러고 보니 30년은 훨씬 넘었는가 보다. 반공을 주제로 한 드라마 ‘그림자’도 그 시절 꽤 인기 있었다.
라디오는 우리 집에서 가장 멋지고 신기한 보물이었다.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었고 즐겁고 신나는 음악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 진주로 이사 오고 나서 라디오는 자취를 감췄다. 텔레비전을 산 것이다. 라디오를 아예 버리고 이사했는지 진주 와서 버렸는지 알 수 없다.
고등학교 때 ‘별이 빛나는 밤에’에 사연을 보내 조그마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상품으로 받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다시없을 보물로 귀히 여겼다. 머리맡에 두고 하루 종일 켜 놓았다. 음악도 듣고 뉴스도 듣고 연속극도 들었다. 텔레비전보다 라디오가 더 좋은 듯했다. 외장 건전지를 사서 검은 테이프로 동여매 놓곤 했다. 간혹 친구가 놀러 오면 “우리 아들이 방송국에서 상 받은 것”이라며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 라디오도 어느 샌가 보이지 않았다. 고장 나서 전파사에 가져간다는 말을 들은 듯도 한데 잘 모르겠다. 라디오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 듣던 노래들은 마음에 남아 있다. 애지중지 라디오를 끼고 살던 아버지의 삶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2014.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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