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집에서 고양이, 개, 소, 닭, 염소를 키웠다. 가축이다. 궁하면 다 잡아먹는다. 팔기도 한다. 닭, 염소는 원래 주인을 영 못 알아보는 놈들이니 그렇다 치고 고양이는, 평소에는 주인에게 딱 달라붙어 아주 친한 척 온갖 아양을 다 떨다가도 수틀리면 주인을 배반하고 달아난다. 그렇게 해서 도둑고양이가 된다. 주인이 이사할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뒷집 암코양이와 달아난다. 배고프면 음식 던져주는 아무에게나 달라붙어 코고는 소리를 내며 갖은 애교를 부린다. 나에게는 그게 배반으로 느껴진다. 소와 개하고는 딴판이다.
늦은 밤, 특히 여름밤 잠 좀 자려고 누웠는데 어디에선가 갓난아기 소리가 들린다. 사흘을 굶었는지 애끊는 소리로 운다. 가엾다. 무섬증도 인다.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옆집인지도 구별되지 않는다. 도대체 에미 애비는 뭘 하고 자빠졌나 싶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 보면 도둑괭이들이 흘레붙는다고 그 난리를 피우고 있다. 저거들 사랑하고 종족 보존하는 것이야 내 어쩌겠는가마는 하릴없이 잠이 달아난 나는 참 얄궂은 밤이 되어버린다. 하필이면 아기 울음소리로 이성을 유혹한단 말인가. 그 갓난아기 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든 등골이 오싹할 것이다.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길바닥에 내장을 쏟아놓고 죽은 여러 즁생을 본다. 즁생이란 말은 나중에 짐승이라는 말로 바뀐다. 고양이도 있고 오소리도 있고 개도 있다. 다람쥐도 길에서 죽고 너구리도 죽는다. 내가 가장 많이 본 것은 고양이다. 불쌍하고 가련하다. 객사한 고양이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굴러먹다 꼭 거기서 죽어야 했는지 알 길이 없다. 길고양이라고 하는 도둑고양이들만이라도 좀 줄어든다면, 특히 출근 시간 기분 잡치는 일도 많이 줄지 않을까.
아는 사람 집에 놀러가서 술 먹거나 밥 먹는 일이 가끔 있다. 나는 고양이 키우는 집에서는 뭘 잘 안 먹으려고 하는 편이다. 칠칠치 못해서 뭘 먹다 바닥에 잘 떨어뜨리는 편인데 앞뒤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그걸 주워 먹게 된다. 밥풀이나 닭 튀김가루나 뭐든 순간적으로 집어 입에 넣는다. 그런데 입으로 음식이 들어갈 때까지는 몰랐는데 입안이 간질간질하고 느낌이 싸한 경우가 있다. 앉은 자리에서 입안의 것을 꺼내보지 못하고 우물우물하다가 화장실 가서 퉤퉤 뱉어보면 고양이털이 묻어있기 일쑤다. 에잇! 화를 낼 수도 없고…. 옷에 묻는 털도 귀찮을 때가 많다. 특히 겨울옷에.
어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괭이들이 너덧 마리 득실거린다. 나는 그 놈들이 눈에 띄기만 하면 신발이나 돌멩이를 집어던져 멀리 쫓아버린다. 어머니는 짐승을 그리 대하면 안 된다며 먹다 남은 고등어 뼈다귀나 닭발이나 라면 국물이라도 준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지만 심심하고 외로운 어머니는 그게 좋은가 보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엊그제 어머니 전화, “아이고, 숨 막혀 죽겠다. 이놈의 괭이 쌔끼가 옥상에서 죽어삣는데 기더리(구더기)가 울매나 많은지…. 아이고, 기도 안 찬다. 울매나 쓸어내고 닦아 냈는데도 안즉도 한참이다. 아이고 무서버라. 저기 다 머꼬. 천지 사방으로 기 댕긴다. 죽을라모 산속에 가서 곱게 뒤지든지 안하고. 어제도 치웠는데 오늘 봉께 또 있어서 아직도 치우고 있다. 밥도 못 먹겠다. 생각만 해도 묵은 기 넘어올라 칸다. 아이고, 저기 다 머꼬!”
이러니 고양이를 좋아할 수 있겠나? 없지. 2014.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