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할 길은 없지만, 장인어른은 젊을 때 커다란 저수지 하나만큼 술을 마셨다 한다. 요즘은 막걸리 한 병을 이틀 동안 드신다. 처가에서 나는 청탁을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장인어른은 오로지 막걸리 딱 반 병만 드신다. 지난해 칠순잔치 때 거듭 권하는 아들과 사위에게 못 이겨 몇 잔 더 드시는 것을 봤을 뿐이다. 그런 장인어른은 장모님과 술 담그는 일에 비교적 정성을 기울이신다. 처가에는 늘 과일주나 약 되는 술이 거실에 놓여 있다. 신혼 때 처가에서 더덕주, 인삼주를 몇 단지 들고 와 이웃 선배와 마주앉아 퍼먹던 추억이 새롭다.
몇 달 전 장모님 생신 때 갔더니 복분자주, 포도주, 더덕주를 크고 작은 단지에 담가 놓으셨다. 복분자와 포도를 함께 넣은 것도 있다고 했는데 빛깔로서는 구분되지 않았다. 작은 병에 담아 몇 잔 마셨다. 좋았다. 달고 쓰고 시고 고소한 맛이 혓바닥에 맴돌다가 입천장에 붙었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땐 나도 모르게 꼴딱 소리가 났다. 뱃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서서히 달아오르다가 목울대가 화끈거리고, 종내 얼굴이 발갛게 물든다. 그게 재미다.
장인어른은 그 복분자주 큰 단지 하나와 큰 병 하나, 더덕주 작은 단지 하나를 내 차에 실었다. 애주가 사위에게 주시려고 그렇게 준비해 둔 것이다. 나는 처남들 주라고 사양했다. 하지만 장인어른의 마음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지금 집엔 처가에서 공수해온 담근술이 제법 남았다. 저녁을 집에서 먹을 때면 맥주잔에 딱 한 잔 따른 뒤 얼음 동동 띄워 마시곤 한다. 차고 달다. 약간 쏘는 맛도 있다. 어쨌든 이건 술이로구나 할 즈음 목으로 넘어가 버린다. 좀 있으면 뱃속에서 신호가 오고 얼굴이 홍조를 띤다. 한 잔만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으나 참는다. 장인어른의 깊은 사랑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 사랑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
2014.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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