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오후 6시30분쯤 평거동 어느 밥집으로 가는 길이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 썼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웠다. 평소 나답지 않은 모습이다.
길가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어이, 반갑다. 잘 지내나? 오데 가노?"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더라... 기억이 안 난다.
가까이 다가가 "누구신지요? 죄송하지만 잘 기억이..."라고 하니
"내 모르겠나? 대아산업..."라고 한다. 대아산업? 모르겠다.
"절 아세요?"라고 물으니 "아니까 불렀지"라고 대답한다.
그 옆에 있던 사람이 키득키득 웃는다. 장난일까?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라고 묻고, "어떻게 알지요?"라고 물었다.
"됐다, 고마 가라.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 손사래친다.
나는 얼굴이 좀 붉어졌다.
마땅히 기억해야 할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 죄인 양 느껴졌다.
결국, 나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누군지, 나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이름은 뭔지,
대아산업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기억해 내지 못했다.
장난일 수도 있고, 그가 나를 잘못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뒷맛은 영 개운찮다.
6월 25일 오후 8시경 시내 모 밥집에서 밥과 술을 먹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누가 나를 보더니 "머하로 왔노?" 한다.
술에 조금 취했지만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를 바라봤지만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
"누구신지요?"라고 했더니 "동기끼리 말 놔라"고 한다.
동기라...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
0.5초만에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어, 그래... 뭐, 모임이 있어서... 재밌게 놀아라.."라고
얼렁뚱땅 둘러댔다. 뒷맛이 영 개운찮다.
그는 누구일까. 친구라 하지 않고 동기라 한 것을 보면
친하게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겠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봤는데 나는 모르고 말았다.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알코올 때문이다.
술을 끊거나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명분이 생겼다.
잘됐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니다.
그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가까운 사이는 아닐 테고,
몇 년 가도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사람은 잊어도 좋은 것 아닐까.
그렇다면 적당히 알코올의 힘을 빌려 잊을 건 잊는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은 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어쨌든 결론은,
기분은 별로다.
201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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