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중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우리는 미리 묏자리를 마련하여 잔디를 심었다. 둘레엔 병과 잡초에 강하다는 녹차 씨를 심었다. 처음엔, 돌아가시지도 않은 분의 묏자리를 만드는 것이 효도인지 불효인지 몰랐다. 집안어른들께 여쭈었더니 오히려 좋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양지바른 곳이라 잔디가 뿌리를 잘 내렸다. 덩달아 잡초들도 쑥쑥 잘 자랐다. 형제들은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당번을 정한 것도 아닌데 번갈아가며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가 잔디를 관리했다. 잡초가 자라 씨를 퍼뜨리기 전에 뽑는 게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생명력과 번식력에서 잔디를 따를 자가 없으리라던 나의 평소 생각은 크게 어긋났다. 비가 온 뒤 가보면 잡초는 어김없이 불쑥불쑥 솟아 있고, 벌써 꽃을 피우고 열매를 퍼뜨리는 놈들도 있었다. 날씨 좋은 봄날에는 무덤가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잡초를 뽑았고, 애들은 근처 개울에서 가재를 잡기도 했다. 여름엔 새벽부터 해 뜰 때까지 일하고 나서 형제가 마주보며 늦은 아침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을 다 보내고 난 작년 9월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만년유택(萬年幽宅)이 될 그곳을 생전에 한 번 다녀가셨다. 기력이 더 쇠하여지기 전에 한 번 다녀갈 것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나선 것이었다. 잔디는 녹색의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신이 어릴 적 꼴 베고 나무하러 다니던 뒷동산 중턱에 나무 몇 그루를 베어내고 돌담을 쌓아 만든 묏자리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금세 촉촉해지셨다. 우리는 침만 삼킬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크게 흡족해 하시지는 않았지만, “내 죽고 나면 묻힐 땅 한 평도 없다.”며 걱정하시던 평소의 한스런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참 잘했다 싶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는 일삼아 자주 산소를 찾았다. 포클레인 지나간 자리의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지는 않는지, 깎여나간 비탈에 심은 잔디는 뿌리를 잘 내리는지, 잡초들은 또 얼마나 창궐하는지, 멧돼지가 출몰하지는 않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부모 돌아가시면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고 하는데, 요즘 세상에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만 정신만이라도 그렇게 해보자 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겨울을 나는 동안 녹차가 모조리 얼어 죽었다. 잔디는 갈색으로 빛이 바랬고 잡초들은 자취를 감췄다. 아무리 양지바른 곳이라지만 꽁꽁 언 땅에 아버지가 누워 계신다는 생각은 불현듯 가슴을 후벼 팠고, 그럴 때는 생전 그렇게 끊지 못하시던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상석 모퉁이에 꽂아드렸다. 담배는 필터까지 타다가 꺼지곤 했다. 근처 참나무 밤나무 낙엽들이 하염없이 쓸려와 뒹굴기도 했다. 괜스레 삶과 죽음이 객관화하고 내면화하여 마음이 아리고 인생이 무상해지기도 했다. 겨울을 나자, 잔디와 잡초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산소를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해도 여전히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산소를 찾았다. 무덤 바로 아래 지천으로 널린 고사리 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고, 인근 대밭에 난 죽순 캐러 간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녹차들은 기적적으로 뿌리가 살아남아 다시 싹을 틔웠다. 뽑아버렸으면 어찌 됐을까.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나는, ‘아버지의 기적’이라 믿고 싶었다. 잎이 넓은 잡초가 녹차를 뒤덮었을 때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만난 듯 짐짓 힘껏 뽑아 멀리 내던지기도 했다. 잔디는 고맙게도 파랗고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형제들은 예초기를 사서, 옛적 중학생 머리 깎이듯 벌초를 했다. “어허, 시원하다.”는 목소리가 정말 들리는 듯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아버지 어머니는 이보다 힘든 농사일로 네 형제를 키웠구나.’ 싶은 생각에 목이 메기도 했다. 그러면서 ‘1년 내도록 찾지 않다가 이맘때 한 번 벌초를 하고 만다면, 그것은 성묘가 아니라 그냥 풀베기일 뿐일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년이 되면 올해만큼 자주 찾지 못할 것만 같고, 그러다 보면 몇 해 뒤에는 우리도 그냥 풀베기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3년상 치르는 마음가짐이 남아 있는, 아직은 더 자주 찾아가 살피고 또 살펴야겠다고 생각한다. 성묘는 무덤을 보살피는 것이면서 내 마음에 채찍을 가하고 생각한 바를 실천하도록 담금질하는 일이기도 하다. 경남도민신문 2013.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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