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책 속에서 나는, 수천 년 전 인물을 만나고 수억만 리 머나먼 우주를 다녀온다. 남녀의 달콤한 사랑을 엿보고 잘못된 역사 앞에서 비분강개한다. 침이 질질 흐를 정도의 맛난 음식을 눈으로 먹고 흐리멍덩한 정신을 일깨우는 죽비소리를 눈으로 듣는다.
그런데 책 읽는 것과 관련한 몇 가지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가장 고약한 버릇은 한 권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다. 재미있겠다 싶은 책을 만나면 망설임 없이 산다. 그러고는 머리말만 읽고 쌓아둔 책이 오거서(五車書)다. 언젠가는 읽겠지 생각하지만 실제 나중에라도 읽게 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누가 강권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생각해서 재미있겠다 싶어 선택해 놓고는 내팽개치기 일쑤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되면 싫증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좀 심하다.
책을 개념 없이 많이 사는 버릇은 그래서 생겼다. 올바른 독서법을 이야기해 주는 책을 보면, 주제를 정하여 깊이 읽기와 넓게 읽기를 하라고 주문하지만 나는 이 책, 저 책 마구 산다. 대개 작가를 보고 선택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매번 좋은 책을 생산하는 것은 아닌데도 나의 판단 기준은 무딘 편이다. 당연히 책값이 제법 들어간다. ‘이제 그만 사고 사 놓은 책을 좀 읽어야지.’라고 결심하지만, 책 소개 기사나 광고를 보면, 그 결심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집안에 책이 자꾸 쌓이니 좀 처분을 해야겠다 싶은 생각을 하다가, 주변에 책을 한 권 두 권 주는 버릇도 생겼다. 헌책 서점에 갖다 팔거나, 요즘 유행하는 온라인 서점 중고매장에 내놔도 될 텐데 그렇게 하기는 귀찮다. 주변 후배들에게 책을 곧잘 선물한다. 물론 내가 읽은 책이다. 그 책에는 내가 읽으며 밑줄 친 곳도 있고, 어떤 책은 아주 알뜰하게 교정을 봐 놓은 것도 있다. 참, 책 읽을 때 오탈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도 버릇이다. 나는 그런 책을 쉽게 주는 편이다. 그럴 때 상대방의 독서취향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마음에 들면 읽을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사람에게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휴일 아침 소설책 한 권을 잡으면 두문불출 저녁 늦게까지 읽는다. 엎드려 읽고 드러누워 읽고 책상에 앉아 읽고, 화장실에까지 들고 들어간다. 그런 날은 아내가 빨래를 하는지 설거지를 하는지 모른다. 바깥이 화창한지 어떤지 궁금해지지도 않는다. 이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일할 때나 집에서나 인터넷 서점을 자주 들락날락하는 것도 좀 고쳐야 할 버릇이다. 조금 한가한 시간에는 신간, 베스트셀러, 중고서점 등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예전에 읽고 싶었는데 놓친 것은 없는지, 나도 모르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없는지 살펴본다. 책 한 권 사면 한 권 더 주는 이벤트는 없는지도 살핀다. 그러다가 생각 없이 산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완독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시내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그냥 나가면 꼭뒤가 간지럽지만, 인터넷 서점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런 버릇도 몸에 배도록 해야겠다. 가령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원고지 몇 장이라도 독후감을 쓰는 버릇을 길러야겠다. 책에 밑줄 긋고, 밑줄 그은 문장은 공책에 옮겨 적고, 모르는 단어 찾아서 적어 놓고, 전체적인 느낌, 배울 점, 깨달은 점 같은 걸 기록해야겠다. 나중에 어디에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그러고 보니 고쳐야 할 버릇은 너덧 가지나 되는데 새로 길들여야 할 버릇은 하나밖에 없다. 가을,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경남도민신문 2013. 9. 23.
'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기의 고마움에 대하여 (0) | 2013.12.24 |
---|---|
아름답고 풍요로운 중년을 위하여 (0) | 2013.11.23 |
내 마음을 살피는 성묘 (0) | 2013.09.17 |
내 마음속의 도둑심보 (0) | 2013.09.17 |
위대한 시내버스 이야기 (0) | 2013.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