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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위대한 시내버스 이야기

by 이우기, yiwoogi 2013. 9. 17.

진주시 가좌동 경상대 앞에서 진주교대 근처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는 상평교 건너 시청 앞을 지나 뒤벼리를 달린다. 버스에는 대학생 손님이 가장 많고 중고등학생도 탄다.

어떤 때는 많은 손님이 빽빽하게 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서너 명이 앉아 가기도 한다. 버스를 타는 사람은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사람보다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차가 많이 막히는 퇴근 시간, 나는 다행히앉아 있다.

내가 탄 버스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기사님의 현란한 운전 솜씨로 도로에 빽빽이 들어찬 차들 사이를 잘도 빠져나간다. 지금은 철거 작업 중인 철길 근처. 길가 버스 승강장에서 손님을 태운 버스는 순식간에 대각선을 그으며 1차로로 간다. 1차로는 좌회전만 허용되는 구역이다. 그래서 이 차가 어디로 가려고 이러나 생각하는 찰나, 버스는 다시 3차로로 방향을 튼다. 좌회전 신호 중일 때는 직진을 못하는데,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긴 3개 차로를 단번에 옮기는 것은 직진이 아니다. 다시 손님을 태운 버스는 태연하게 개양오거리까지 간다. 다른 승용차와 택시들은 오도 가도 못 하고 주차장 같은 길에 서 있는데, 오로지 위대한 시내버스만이 대중교통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호탄동을 지나 상평교 밑을 통과하여 상평교로 진입할 때 버스는 위태위태하게 다른 차들을 추월한다. 버스 바깥에서 보는 버스는 부드럽고 날쌘 동작을 자랑하는지 모르지만, 버스 안 승객들은 손잡이를 꽉 잡아야 하고 심지어 앉은 승객들도 허리운동을 심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모를 것이다.

삼현여고 앞에서 버스 기사님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승객의 시선이 일제히 버스 앞쪽으로 쏠린다. 어느 여중생이 버스 카드를 미리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입구에서 주춤거리자 기사가 화를 낸 것이다. 손님을 빨리 태워야 한다는 직무에 충실한 기사님에게 이 학생은 장애물이었을까, 손님이었을까. 무안해진 학생이 부끄럼 가득한 붉은 얼굴을 숙이며 사과를 하는 모양이다. 고함소리가 한 번 더 크게 나고서야 학생은 요금을 해결하고 뒤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울지는 않았지만, 억울함과 미안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분노를 삭이는 표정이다. 버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뒤벼리에서 다시 한 번 속도경쟁을 한다. 앉은 나도 손잡이를 꽉 잡는다.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버스는 2차로 중간에 선다. 버스승강장이라고 만들어져 있는 공간에 승용차가 한 대 있기는 했지만 버스가 정차할 공간이 충분히 있긴 했다. 하지만 기사님은 거기에 차를 세울 생각이 아예 없다.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버스 때문에 뒤따르는 다른 차들이 줄줄이 서는데도 그건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 같다. 중앙시장에서 짐을 든 아주머니 두 분이 탔다. 몸을 뒤뚱거리며 자리를 찾아 휘둘러보았으나 자리가 없다. 다행히 어떤 학생이 양보를 한다. 짐을 의자에 갖다 놓고 다시 입구 쪽으로 가서 요금을 낸다.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아주머니는 겨우 중심을 잡으며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진주교대 지난 뒤 내린다.

나는 버스 기사님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하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고 태평하게 버스 기사님의 곡예운전과 과속운전, 신호위반, 난폭한 언어를 보고만 있었다.

나는 스스로 바쁜 척했거나 그런 모든 상황을 못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른 척하는 것은 다소 비겁하지만 덕분에 목적지까지 빨리 가지 않았느냐 생각하였을 것이다. 버스 기사님도 그날따라 시간에 쫓기다 보니 어쩌다 그랬을 뿐 다른 때는 안전운전, 양보운전, 신호준수, 친절한 서비스 같은 것을 잘 실천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합리화한다. 나의 퇴근 시간을 엄청 줄여준 고맙고 위대한 시내버스는 내 옆을 쌩 지나간다. 경남도민신문 2013.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