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억울하게 돈을 떼인 사람들의 안타깝고 눈물겨운 사연을 본다. 구멍가게를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평생 동안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날린 사람, 거액의 퇴직금을 투자했다가 모두 잃은 사람, 부동산 부자를 꿈꾸다 날벼락을 맞고 살던 집에서마저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친다. 나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미안하고 엉뚱하게도, 사기 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도둑심보를 본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은행 금리가 크게 요동쳤다. 대출금리가 20%에 육박해 파산하는 기업가, 자영업자, 개인이 속출했다. 반면 예금금리도 덩달아 올라 돈 있는 사람들은 “이대로!”를 외칠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이 극명하게 드러나던 참담한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일부 돈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이자를 준다는 ‘파이낸스’라는 유사금융기관에 돈을 맡겼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중은행에서 예금이자를 20% 정도 준다던 그 시절에 40~50%의 이자를 준다는 말에 혹하여 돈을 맡겼는데, 이자는커녕 원금마저 손해 보거나 아예 떼였다며 울부짖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산 좋고 물 맑은 시골마을을 개발한다며 투자를 ‘권유’하는 광고를 보게 된다. 직접 전원마을로 낙향하여 살지 않더라도 일단 투자해 놓으면 몇 배의 수익으로 돌려줄 거라면서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수백억 원의 투자금을 챙겨 야반도주한 놈과, 그 놈을 잡아달라고 울먹이는 사람들의 영화 같은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는 ‘대박’에 대한 환상이 늘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 한 번의 좋은 기회를 잡아 인생을 역전하려는 서민들의 꿈과,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이익을 좇아 부나방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부자들의 과욕이 강물 위 쓰레기처럼 떠다니고 있다. 꿈인지 과욕인지 모를 이 정체불명의 환상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도둑심보를 노린다. 통장에 든 돈 몇 푼을 어떡하면 수십 배, 수백 배로 불릴 것인가 궁리하느라 눈알을 마구 굴리는 그 심보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그리고 예정도 아니고 계획도 아닌 것을 확정과 확신이라는 당의정으로 포장하여 유혹한다. 마음속 도둑심보는 불행하게도 유혹에 약하고 단맛에 길들여져 있다.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은행에서 예금이자를 많아야 3~4% 준다는 요즘, 10% 이상의 수익률을 올려주겠다는 말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건 도둑심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1000원짜리 물건 하나 팔면 100원 남기기도 힘든 세상에서 원금 몇 배를 몇 개월 안에 안겨준다는 말이 달콤하지 않을 리 없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사기꾼의 논리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대개, 사람들은 함께 해야 하는 일에는 참가를 꺼리고 균등하게 배분해야 할 이익에는 눈독을 들인다. 나라에 내는 세금은 어떡하든 떼먹으려 하지만 나랏돈으로 하는 복지혜택은 촘촘하게 누리려 한다. 내 땅이 도로에 편입될 때는 악착같이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자는 적십자회비는 모른 척 외면한다. 이런 게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다. 심지어 일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구할 때도 경제적,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도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바로 도둑심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보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꼭 한 번쯤은, 제 마음속의 도둑에게 재산을 사기 당하게 된다. 대박, 인생역전, 일확천금…. 이 말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평소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며 나의 재산을 이웃을 위해 나눌 줄 아는 사람에게 어느 날 문득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것 아닐까. 내 마음속에 도둑심보가 들어앉아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조종하고 있다면, 이 말은 파멸, 쪽박, 파산의 동의어로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 경남도민신문 201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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