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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위층에도 아래층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by 이우기, yiwoogi 2013. 4. 24.

1998년 신혼살림을 5층짜리 13평 주공아파트 2층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세 들 때 살던 아래층이 이사 가고 다른 부부가 오면서 우리 집과 아래층 간에 다툼이 생겼다. 1층 아주머니가 소음이 너무 심하니 자제해 달라.”고 한 것은 시작이었다. 그때 아들은 3살이었다. 대낮에도 아이의 발소리가 너무 크니 조용히 시키라고 욕을 하더라며 울먹이는 아내를 보고 난 할 말을 잃었다. 위층에 사는 게 죄이니, 참고 조심하자 했다. 방바닥에 고무 깔개를 깔고 여름에도 양말을 신겼다. 그래도 아래층 아주머니는 참기 힘들었나 보다. 79살 아들을 차례로 올려 보내 항의하거나 시간에 구애 없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스트레스였다. 그때도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 때문에 불미스런 일이 더러 일어나곤 했다.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고 좀 심하다 싶은 점도 분명히 있었다. 휴일에 아들이 내 목에 기어오르다 뛰어내리는 장난을 칠 때, 정말 무례하게 현관문을 열어젖힌 그 아주머니를 나는 힘으로 밀어내고 욕을 퍼부어줬다. 몇 달 동안 쌓인 앙금이 부지불식간에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일상적인 소음 외엔 세 살배기 아들의 발소리뿐이었는데 그걸 못 참은 것이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도 꽤 오래됐다. 우리는 2층에 10년째 살고 있다. 아래층에서 딱 2번 조용히 해 달라며 올라온 적이 있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었고, 우리는 집들이를 여러 번 했던 것이다. 문제는 3층 사람이 바뀐 때부터 시작됐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밤 10시쯤 퇴근하는 것 같았다. 문을 여닫는 소리, 세탁기 돌리는 소리, 이 방 저 방 오가는 발소리, 마늘인지 참깨인지 찧는 소리, 청소기 소리, 심지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나는 몇 년 전 주공아파트 살 때 기억이 떠올라 참았다. 그러나 정말 참기 힘든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난해 7월이다. 거실에서 무더위와 모기와 싸우며 겨우 잠들던 시간이 11시쯤이었을 것이다. 위층의 소란이 시작됐다. 무엇을 던지고 찧고 구르고 울고불고 고함치고. 그것은 새벽 1시를 넘어 2시 가까이 계속됐다. 나의 인내는 한계를 넘어섰다. 말리는 아내에게 크게 화를 내고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자 잠옷 바람의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제발 잠 좀 자자.”는 말과 아래층에 사람이 사는 걸 좀 알아 달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뒤의 말은 미처 하지 못했다. 문을 쾅 닫아버린 것이다. 다시 돌아와 잠을 청했으나 위층의 전쟁은 계속됐고, 나는 기어이 경찰에 신고를 했으며, 경찰이 다녀간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가 중천에 떠오른 아침 7시까지 소란은 계속됐다.

며칠 전 아파트 층간 소음과 관련하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의 판결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주민끼리 다투다 감정이 격해져 더 큰 폭력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조치이다. 어쨌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판결대로라면 아래층에서는 위층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면 안 된다. 집 안으로 들어가서도 안 된다. 전화나 문자 등의 소극적 항의만 허용된다. 직접 대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까. 거꾸로 위층(아파트는 1층과 꼭대기 층을 빼면 모두 위층이자 아래층이다)에서도 조심해야 할 몇 가지 규범이 구체적으로 있을 수 있겠다. 10시 이후엔 아래층의 수면을 방해할 어떠어떠한 행동을 하지 말 것 등등. 그렇지만 이러한 것을 법으로 정하고 판사가 판결한다고 지켜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평소 아래층에도 사람이 살고 위층 사람도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다툼의 여지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늘 이웃 간에 웃으며 인사하고 맛있는 음식 나눠 먹으며 사이좋게 지낸다면 층간 소음으로 인한 분쟁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신혼살림 때의 아파트와 지금 사는 아파트의 경우를 놓고 생각하면, 나는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한 노력을 그리 많이 한 것은 아니지 싶다. 경남도민신문 2013.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