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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도토리묵

by 이우기, yiwoogi 2012. 3. 22.

월아산에서 노다지를 발견했다. 청곡사 뒤 산길을 걷고 있는데 엄지손가락 끝마디만한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게 아닌가. 그날따라 등산객도 거의 없었다. 겨울을 날 다람쥐를 위해 야산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날 그곳에는 그런 걸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도토리가 많았다. 우리는 김밥과 과일을 먹고 난 후 헐렁해진 배낭에 도토리를 주워 담았다. 그것을 어머니께 갖다드렸다. 어릴 적 해먹곤 하던 도토리묵 생각에 입에 군침이 돌았다.

얼마 뒤 과연 어머니는 그 도토리로 두부판 하나 가득 도토리묵을 해 놓으셨다. 야들야들 탱글탱글하면서 아주 약간 떫은맛이 도는 어머니표 도토리묵과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요기를 하면서도 나는 잘 몰랐다. 도토리 껍데기를 벗겨 가루로 곱게 빻아서 물에 담가 떫은맛을 우려낸 다음, 가라앉은 전분을 끓여 익히고 식히고. 그 과정은 쉽지 않은 노동이다. 하루 일거리로 충분하다. 또 간장참기름양파마늘고춧가루깨소금 따위를 적당히 섞어 만드는 양념장도 정성이 이만저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나는 도토리묵을 먹으면서 어머니의 손맛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몰랐던 것은 더 있었다. 내가 갖다드린 도토리로는 어림도 없다며 어머니는 도토리를 더 주우러 일부러 몇 번 더 산에 갔다 왔다. 생각해 보니 늘 그랬다. 어머니는 해마다 봄이면 고사리 꺾으러 며칠씩 주변 야산을 돌아다녔다. 봄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햇쑥을 캐기 위해 채비를 서두르곤 했다. 철따라 들판으로 나가 돌미나리달래냉이씀바귀죽순머위방화두릅산초 따위 나물거리를 뜯어왔다. 밤이면 형광등 밑에서 나물 속에 섞인 티끌을 하나하나 가려내면서도 피곤한 줄 몰라 했다. 미리 데쳐야 할 것, 내다 말려야 할 것, 제사 때 쓸 것, 당장 무쳐 먹을 것 이렇게 분류하곤 했다. 지금 내 입맛은, 그런 나물들이 품고 있던 들바람 소리와 봄내음과 땅기운을 잘 버무린 어머니 손맛에 딱 맞추어져 있다.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들로 산으로 나가는 일이 힘겹다고 했다. 산이 무섭다고 했다. 뱀에 물릴 뻔한 적도 있고 낭떠러지로 구른 적도 있다고 했다. 어떤 땐 짐이 무거워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 나는 시장에서 사 먹으면 되는데.”라는 말만 했다. 시골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신 어머니에게 그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본능적 노력의 하나라는 것을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간혹 식당에서 도토리묵을 먹게 되면 생각한다. 해마다 가을이면 월아산에 도토리가 지천일 텐데, 어머니표 도토리묵을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는지. 경남일보 201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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