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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책 주는 즐거움

by 이우기, yiwoogi 2012. 3. 16.

책은 향기롭다.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묘하게 만들어 내는 책의 향기는 머리를 어질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새 책은 새 책대로, 헌책은 헌책대로 독특한 향기로 코를 자극하고 머리를 자극한다. 어서 나를 펼쳐 읽어 달라는 애원 같기도 하고, 나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경고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책 읽는 즐거움은 어릴 때 몸에 배는 것 같다. 나는 일고여덟 살 무렵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그때는 대부분 교과서였다. 새로 산 라디오 설명서나 아버지가 사 오신 돼지고기를 둘둘 말아 싼 신문지, 또는 화장실에 갖다 놓은 오래된 주간지들도 손에 잡히면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때는 오로지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에 매달렸고 대학에서도 독서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았다. 성적에 얽매이고 입시와 취업 스트레스에 머리가 아팠기 때문일까.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책에서 풍기는 맛깔난 향기를 제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십대 후반이다.

특별한 독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나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시나 소설은 기본이고 교양서적과 역사책, 대하소설도 제법 읽어냈다. ‘오거서(五車書)’만큼은 아니지만, 누군가 요즘 뭐 읽고 있느냐?”고 물으면 즉답할 수 있었고, 또 누군가 어떤 책을 사줄까?”라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바로 이 책!”이라고 말할 준비가 늘 되어 있었다.

책에는 인생이 있고 역사가 있고 철학이 있다. 훌륭한 사람들의 영웅담이 있고 악한 사람들의 몰락기가 있다. 그저 그렇게 보이는 인생에서도 배울 게 있고,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사람이라도 욕을 해줘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것을 책에서 읽고 배우고 깨닫는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읽은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선물을 할 일이 있으면 곧잘 책을 사 준다. 나는 인터넷서점이나 동네서점으로 전보다 자주 간다. 책을 주는 즐거움은 읽는 즐거움과 비슷하다. 책을 주는 것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헌책이든 새 책이든, 책을 주는 나의 마음속에는 작은 바람이 있다. 한 권의 책에서 하나씩만이라도 꼭 얻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람도 열심히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선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하나 더. 나처럼 닥치는 대로 읽지 말고, 체계적, 계획적으로 읽고, 밑줄을 긋든 독서록을 쓰든 기억에 오래 남도록 조금만 더 수고스럽게 읽었으면 좋겠다 하는. 경남일보 201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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